살며 살아가며/이런저런생각

누가 높은가?

by Fragments 2003. 3. 13.
오늘 학교에서 신약학의 김지철 교수님의 퇴임예식이 있었다. 거의 20여년간 장신대에서 열심으로 가르쳐온 일을 마치고 이제 소망교회의 담임목사로 가게 되는 것이다. 장신대에서는 너무나 아까운 교수님을 놓치는 것이었고, 소망교회로서는 듬직한 목사님을 얻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예배인지라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의 고별 예배를 위해 모여들었다. 예배당이 가득 찼다. 다른 학교에서는 퇴임하는 교수가 강연회를 연다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예배때 설교를 마지막으로 한다고 한다. 총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로마서 1장을 중심으로 소명과  관련하여 설교하시고, 이제는 학생들의 꽃다발 증정 시간이 오게 되었다. 뜨거운 박수와 함께 학생들이, 직원들이 준비한 꽃다발과 선물이 전달되었다. 김지철 교수님의 답사가 있을 시간이었다. 그때 예배인도를 맡은 총장님이 김지철 교수님을 향하여 설교단에 올라서서 말씀하시라는 안내를 해보였다. 그러나 김지철 교수님은 인도자상에 가서 하겠다고 손짓을 보였다. 하지만 총장님은 다시 한번 설교단에 올라가서 하라고 손짓을 했다. 김지철 교수님은 발걸음을 옮겨 결국 교수님의 뜻대로 인도자상에 가서 답사를 하셨다.

학교에는 두개의 강대상이 있다.
하나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다.
또 하나는 말씀이 낭독되고 설교가 행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맡은 순서에 따라 각각의 강대상 옆에 앉게 된다.
그런데 총장님은 이걸 우습게 보셨다.
높여주는 뜻으로 교수님께 설교자상에 가서 답사를 하라고 인도하셨겠지만, 그는 지금의 순간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고 있는 김지철 교수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봤어야 했다.

그것때문에 오후 식사시간까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화가 났다.

지금도 화가나니까 이런 글을 쓰고 있을게다. 하지만 내가 그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당연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이 가장 높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높이는 것에도 사랑이 있어야 할것이다.
시기심으로 미워함으로 뜻을 이루면 그것은 하나님이 높임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혼란스러움만 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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