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264 개미 내쫓기 박하를 싫어하므로 현관문 밖에 몇 그루 심어 놓으면 개미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고춧가루 또는 설탕과 붕산을 반씩 섞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에 뿌려 놓아도 좋다. 어린이나 애완 동물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는 붕산을 두지 말아야 한다. 개미 구멍을 아는 경우에는 끓인 물 한 주전자를 부어 넣는다 --퍼옴 미안해라는 말이 더 소중해! 장끼가 까뚜리를 만났다. 둘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장끼는 까뚜리와 함께 새들의 사제인 올빼미를 찾아갔다. 장끼가 말했다. “저희는 결혼을 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요.” 그러자 올빼미가 물었다. “둘은 다투어 본 적이 있는가?” 장끼와 까투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올빼미를 쳐다보았다. “심하게 다투어 본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묻는 올빼미에게 장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투다니요?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니까요!” 올빼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진정으로 한바탕 다툰 일이 있은 다음에 둘이서 다시 오게. 그때 가서 자네들의 결혼을 허락할 것인지를 결정하겠네.” 까두리가 대꾸했다. “다투면 헤어지는 거지, 결혼은 왜 합니까?” 장끼와 까투리가 떠나고 난 뒤 곁에서 지켜 보고 있던 산.. 희망의 심마니가 되라! "희망의 심마니가 되라!" 나는 살아오면서 죽음 직전까지 갔던 큰 위기가 3번 있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만 계셨고 아버지는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 사셨다. 그나마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버렸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슬픔과 절망에 가득찬 채 오직 죽음만을 생각하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학소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괴로움을 글로 쓰면서 풀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어쩌다가 나를 찾아 집에 오면 나는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움에 바르르 떨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소녀였던 셈이다. 절망과 슬픔이 나의 주성분이었던 사춘기를 지나고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현실적으로 판단하면 최악의 조건을 가.. 우리의 정해진 시각들이 주는 안타까움 금요 심야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다 약국건물 앞에서 노숙자 두명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환하게 밝혀진 약국문 앞쪽에서 비를 피해 누워 있는 두 사람은 누가 깨워도 일어날것 같지 않았습니다. 정말 초라하게 불쌍하게 그렇게 누워 있는 두 명의 모습위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투명유리 안쪽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약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대조감이 느껴지더군요.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모습들을 용인해왔던 것일까? 언제부터 자기 집앞에 추위를 피해 누워 있는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 그냥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던 것일까? 누군가 사람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것. 그것이 정상의 모습은 아닐텐데 우리는 무심히 그런 모습을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넘어가 버린다. 우리라고 말하기는 그렇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