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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ociety/좋은글

레닌의 회심

by 길목 2003. 2. 4.
1926년 6월 바티칸의 공식 기관인 '오세르바토르 로마노'(Osservatore Romano)는, 어려서 레닌의 친구로 서방으로 이민 온 비토리오 보도라는 헝가리 신부가 레닌이 아파서 다 죽어갈 때 그를 방문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레닌은 비토리오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잘못했네.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의 방법은 또 다른 억압과 끔찍한 대학살을 불러오고 말았네, 정말 슬픈 것은 내가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피의 바다에 빠져야 한다는 걸세.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10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네."  일리오의 몬시그노르 드헤르비그니 주교는 이 이야기를 의심했으나 직접 비토리오 주교와 면담한 후에 그의 입으로 인정했다.

그는 1946년에 출판된 한 이탈리아 잡지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레닌은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의 아내 크루프스카이아는 일기장에서 레닌이 나중에 공산주의자들에게 교수형을 당한 가폰이라는 정교회 신부를 만났다고 썼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소련의 한 무신론주의 잡지(Nauka i Religia) 1973년 12월호에 실린 글이다.   레닌은 한 동료 공산주의자가 모은 기독교 소종파의 글들, 특히 오래된 필사의 원고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그것들을 철저히 연구했다......특히 철학적인 글들에 관심이 있었다.

한번은 "몰로카니"(러시아의 한 종파로, 후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거의 뿌리가 뽑혔다)의 원고들을 유심히 읽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 이것이 단순한 자들이 쓴 거란 말이지. 이 모든 책이!"  공산주의 잡지는 여기까지만 말했다. 이 이야기 뒤에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레닌이 옛 신자들의 몇몇 원시적인 글이나 비토리아 신부가 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책을 읽고 죽기 전에 병상에서 회심했다는 이야기가 숨겨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깜짝 놀랄지 모른다. 그리스도인을 수도 없이 죽이고 회심한 블라디미르 레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지 모른다.

소련에서 나온 몇몇 반체제 인사들은, 레닌이 죽기 전에 신부에게 고백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희생당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죽어갔다. 이들의 기도가 응답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늘 촉구하는 것은 자유 세계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공산주의 지도자들과 우리 나라의 좌익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쓰라는 것이다. 유다에는 고관들이 궁정에 들어가 왕에게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전했다(렘 36:20).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큰 고기를 잡아야 한다!  스탈린의 첫 동지이자 후계자였으며 수백만의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 선 말렌코프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죽었다. 회심으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던 최고의 공산주의 권력자가 어느 날 갑자기 빵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시민들과 같이 서 있었다. 그는 채찍을 맞는 사람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KGB 간부인 아타이예프와 코니코프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한 후에 스스로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삶을 마쳤다. 이들은 구원자께 나아와 자신들이 했던 그 고문을 그대로 당했다.  우리가 핍박받는 형제들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면, 엄청난 영적인 능력을 얻으며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원수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리차드 범브란트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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