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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Faith/능력의 하나님

어머님이 교회에 나가시기까지

by 길목 2006. 6. 16.

어머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도 안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3때 집앞에서 놀다가 성현교회 장로님이 전도해서 믿게 되었다.  사실 정말 믿고 구원받은 것은 20살때였다. 구원의 기쁨을 누린후,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어머님을 긍휼히 보게 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교회 나가시길 원했지만, 가족 전도는 그리 쉽지 않았다.
교회에서 제사 지내지 말라는 말을 듣고 바로 아버님 기일에 제사를 피해 새벽에 교회로 왔다가 저녁때 들어갔을때, 어머님이 화내셨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의 그런 행동 때문인지 어머니는 교회 나가자는 말에 대해 더욱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결혼을 준비하던 2003년 어머님이 정말 기적적으로, 사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꿈꾸지도 못했던 교회에 나가셨다.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정말 그 일은 막연하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을 하나님이 가능으로 만들어주신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일을 위해서 매번 방문해주시고 어머니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해주셨던 성현교회 사모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후 얼마뒤에 어머님께서는 그동안 지내오던 제사도 안지내시기로 하셨다. 교회 나가고 당연한 일 같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믿는 사람가운데 제사 문제로 시험을 겪는 사람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런 결단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불효자식이라고 욕할 것이라 누누히 말씀하셨는데, 이제 어머님이 제사를 폐하시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2003년 말을 기념으로 마지막 제사만 지내시고 2004년에는 제사를 폐하시기로 결정을 하셨다. 가족들을 모아 놓고 형에게는 교회에 나가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하는 대로 하시겠다고도 말씀을 하셨다.

이후 2004년 10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추모예배로 드리게 되었다. 성현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드렸던 기억이 난다. 처음이라 어머님도 나도 어색했지만, 너무나 기뻤고 가족들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뒤 나와 아내는 어머님을 일주일에 1번씩 꼭 찾아뵙고 믿음으로 권하고 빨리 구원받으실수 있도록 기도하기로 했다.

2005년 6월말 여러 가지 문제로 나는 예수원을 다녀오면서 재충전 되는 한주간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되었고, 매일같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충만한 때였다. 작은 방을 기도방으로 만들었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회를 가졌으며, 텔레비젼은 시청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아예 종이로 가려놓았다. 신앙서적도 많이 읽으며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본받으며 시간을 정말 성령충만하게 보내는 즈음이었다.

2005년 6월26일 주일 저녁, 청년들과 모임을 끝낸후 집에 들어가니 11시.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울고 있었다. 아내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어머님을 찾아뵈었는데, 조용히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동안 갑자기 살도 많이 빠지고, 몸이 눌린 듯 너무 아프셔서 고생을 하셨는데, 교회만 다녀오시면 더 아프셨고, 교회에서 심방오시는 날은 심하게 손이 떨리셨다. 그래서 얼마나 아프셨는지, 자살까지 생각하셨다고... 그러던 어느날 주변분들이 우리에게는 말하지 말고 점을 한번 보라고 권하였고, 무당이신 고모님을 찾아가 고모님이 추천해주시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보셨다.

그곳에 가서 어머님은 돌아가신 아버님과 할아버님 그리고 죽은 막내동생을 만났다. 그리고 2005년 구정때 많이 아프셔서 응급실까지 가셨었는데, 아버님 말씀으로는 그때 제사를 안드리셔서 어머님을 데려가시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고프다 배고프다 하시면서 앞으로 밥을 차려주면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노라고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화재로 죽은 막내동생도 나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작은누님과 형님 모두 자신이 부추겨서 사업하게 하고 실패하게 했다며 밥 얻어먹을 곳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고 어머님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가서 보니 정말 미신이 없다고는 못하겠더라. 말도 안 했는데, 죽은 사람들이 다 나와서 지나간 일에 대해 얘기하니...”


그리고 앞으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약속을 하고, 돈을 얻어서 죽은 영혼들에게 옷을 해주고 식을 치러주셨다. 그 후부터는 더 이상 몸이 괴롭지도 않고 식사도 잘 하실수 있었다고 전해주셨다. 그러면서 결론을 맺으시기를,

“나는 이렇게 편하게 살테니, 앞으로는 너희만 교회 나가라. 나는 예전처럼 하겠다”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이었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몇분 지나지 않아서 내 안에 오히려 희망이 솟아났다. 오히려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전일을 살펴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어머님이 점을 보러 가셨던 그 주간 나와 아내는 어머님을 찾아뵐수가 없었다. 그때 아내가 무척이나 아팠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의 일기를 찾아보니 이랬다.

아침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양쪽 어깨는 무거운 것에 눌린 듯 했고, 살을 스치기만 했도 너무 아팠다. 그냥 감기몸살인지 알고 병원을 몇군대 다녔었다..

그런데 아무병도 아니라고 해서, 집에 있으면서 아무곳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머님께서는 무당을 찾아갔고, 사탄에게 넘어가셨던 것이다. 앞뒤의 일을 살펴보고 영적으로 어머님이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셨고 속아넘어간 것을 안 이상 가만 있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도 진을 짰다. 주변에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연락을 해서 작정기도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7월 한달동안 이 일에 승부를 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부흥회를 하였고 시간이 나면 며칠동안 아내와 함께 기도회도 하였다. 그런데 작정한 한달 후 어머님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겼다. 이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센녀석이 공격했으니 우리도 세게 대적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어머님을 찾아뵈어서는 더더욱 조심하고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서 행동했다. 가끔씩 직접적으로 권하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예수믿는 사람들의 선함을 베풀자는 아내의 권유로 계속 그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날것 같지 않은 시간이 무작정 흘렀다.

그로부터 9개월만에 정확히는 2006년 3월9일에, 너무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머님께서 아내를 불러 조용히 이렇게 고백하셨다.

“나 다시 교회 다니련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어머님께서 그 전날 저녁에 꿈을 꾸셨는데, 그 꿈에 왠 하얀 옷을 입은 여자분이 나와서 머리맡에 앉으셔서 너는 교회 나가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또 한참후에 다시 한번 하얀옷을 입은 여자가 나와서 교회에 나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너무 이상해서 무당을 하시는 고모님께 전화를 했는데, 고모님의 해석이 너무나 멋졌다. ‘너 이제 교회 나가야겠다. 네 선영이 나타난 것 같은데, 니 아들이 세게 나가니까 그런것 같다. 넌 그냥 교회 나가라’ 그러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도 의외의 상황으로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어머님이 점을 보고 교회를 안나가시고 난 이후 처음에는 아프지 않으셨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서 어머님은 다시 아프기 시작하셨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은 사탄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마귀는 속이는 자라고 하였는데, 정말 그랬다. 어떻게해서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고, 마음을 얻으니까 그걸로 끝내 버린다.

아직도 어머님은 매주 교회를 나가신다. 언제 확실히 죄사함받고 구원을 얻으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은 곧 오리라 믿는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우리 집의 믿음의 가장이 되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무장하고 기도해야 겠다. 틈을 보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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