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교수님이 평화신학에 대해 가르치시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버스에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데, 이 버스의 운전기사가 미치광이여서 차를 몰아 다 죽이려고 돌진하고 있다면, 그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폭력을 부르짖는다면, 그 운전사에게 대화로 타일러야 할테고, 그렇지 않고 어떻게든 승객들을 살려야 한다면, 그 운전사에게 무력을 휘둘러야 할터인데....
참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그냥 죽게 놔둘수는 없는 문제이고, 그렇다고 그리스도께서 많은 적들이 자신을 해하려는 상황에서도 용서할것을, 비폭력을 천명하신 것을 보면 무력을 사용해서도 안되고... 과연 어떻게 할것인가?
한나라의 지도자로서는 당연히 많은 승객들을 보호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일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무력으로 진압해서 많은 승객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그에 동조하고 무력사용에 찬성할것인가?
어렵다..
반전을 부르짖으면서도 집회를 막는 경찰들을 분노에 차서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작은 전쟁이고 작은 폭력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평화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실것을 기도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이미 일어났지만, 평화를 기도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을 아예 막아주실것을 기도한다.
하지만 600만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떠하셨는가?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단 말인가? 하나님이 없다라는 고백은 그들의 처절한 기도를 무시한 하나님께 대한 절규가 아니었던가!
그러면 하나님이 안계신것인가? 하나님이 무능하신 분이신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결단코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보시기에 지금 이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더이상 아무 기회도 없는 선과 악의 분별이 아닌, 긍휼과 은혜가 가능한 시대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때문에 지금 이 고통의 시대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다시금 하나님께 요구하는 어이없는 일을 행하고 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요구였다. 피스메이커의 역할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도 해주셨다(마5:9).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보내신다고 말씀도 하셨다.(요17:18)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하기 전에 살펴야 할것들이다.
어찌되었든 침략전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래서 고등학교 국사시간에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르치는 우리나라가 침략전쟁에 군을 파병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중충한 화요일에..
버스에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데, 이 버스의 운전기사가 미치광이여서 차를 몰아 다 죽이려고 돌진하고 있다면, 그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폭력을 부르짖는다면, 그 운전사에게 대화로 타일러야 할테고, 그렇지 않고 어떻게든 승객들을 살려야 한다면, 그 운전사에게 무력을 휘둘러야 할터인데....
참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그냥 죽게 놔둘수는 없는 문제이고, 그렇다고 그리스도께서 많은 적들이 자신을 해하려는 상황에서도 용서할것을, 비폭력을 천명하신 것을 보면 무력을 사용해서도 안되고... 과연 어떻게 할것인가?
한나라의 지도자로서는 당연히 많은 승객들을 보호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일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무력으로 진압해서 많은 승객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그에 동조하고 무력사용에 찬성할것인가?
어렵다..
반전을 부르짖으면서도 집회를 막는 경찰들을 분노에 차서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작은 전쟁이고 작은 폭력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평화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실것을 기도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이미 일어났지만, 평화를 기도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전쟁을 아예 막아주실것을 기도한다.
하지만 600만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떠하셨는가?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단 말인가? 하나님이 없다라는 고백은 그들의 처절한 기도를 무시한 하나님께 대한 절규가 아니었던가!
그러면 하나님이 안계신것인가? 하나님이 무능하신 분이신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결단코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보시기에 지금 이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더이상 아무 기회도 없는 선과 악의 분별이 아닌, 긍휼과 은혜가 가능한 시대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때문에 지금 이 고통의 시대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다시금 하나님께 요구하는 어이없는 일을 행하고 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요구였다. 피스메이커의 역할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도 해주셨다(마5:9).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보내신다고 말씀도 하셨다.(요17:18)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하기 전에 살펴야 할것들이다.
어찌되었든 침략전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래서 고등학교 국사시간에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르치는 우리나라가 침략전쟁에 군을 파병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중충한 화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