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이번 사역은 내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우선은 한 진의 지기(팀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장의 보조 역할)로서 역할을 감당해야한다는 사실이었고, 제대후의 첫 사역이라는 것이었다. 준비하기까지의 많은 깨달음 들이 있었기에 나는 이번 사역에서의 하나님의 개입하심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사역이 끝난 지금 내게는 약간의 허탈함만이 남았을 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역이 끝나고 돌아온 다음 월요일까지는 그러했다.
우리가 맡은 마을은 서정이라는 25가구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분들 중의 15가구나 예수님을 믿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마을이었다. 마을 분들이 많이 예수님을 믿고 있어서 전쟁터의 군인의 기세를 가진 나로서는 상당한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 끝에는 90여세 되는 할머님이 그 아들 되시는 아저씨와 아줌마 부부와 함께 살고 계셨다. 노환으로 앞을 못보시고 잘 듣지 못하셔서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으시는 분이셨다. 찾아가서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앉아서 말씀을 듣게되면 할머니는 가끔씩 ‘예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시며 깊은 생각을 하시곤 하셨다. 할머님의 그런 정성스런 모습에 적잖은 감동을 받고서 그 집을 나서게 되고, 그 할머님을 의지해 그 아들 아저씨를 목요일에 전도해보리라 다짐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목요일 오후의 황금시간에 그 할머님댁을 찾아갔다. 마침 아저씨가 마루에 앉아 계셨다. 나는 잠깐 묵상기도 한 후에 가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아저씨도 할 말씀이 계셨던지 나에게 유교부터 불교 기독교를 총 망라하면서 나는 그런 것에 관심 없으니 딴 데 가보라고 아주 겸손히 말씀을 건네셨다. 덧붙여 조상을 모시지 않는 기독교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말이다. 아저씨 앉아 계신 곳에 멍하니 아저씨 하시는 모습을 보자니 오늘이 제사날 이라고 제사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어떻게 해야할지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가눌 수 없는 실망과 허탈감이 나를 짖눌렀다. ‘역시 몇마디의 말로는 안돼는건가? 나는 바울과 같이는 전할 수 없는 위인인가?’ 나를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노환의 할머님이 나오셨다. 마루에 앉으시며 나에게 말을 걸어 오셨다. 메마른 풀과 같이 녹아있던 내 몸이 파르르 솟구쳐 올랐다. “할머님, 예수님 꼭 끝까지 믿으셔야 돼요.” 할머님의 믿음을 확신케 하면 내가 힘을 얻을까봐 건넨 말이었다. 그 다음 할머님의 말은 나로 하여금 전의를 완전히 상실케 하였다. “제사도 안지내는 그걸 믿어서 뭐하노? 그걸 믿을려면 진적에 믿었어. 쯧쯧...” 평소에 입속에 ‘예수님’을 달고 지내셨던 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실망감 뿐만 아니라 분노심마저 일어났다. 난 그 집을 나섰다. 아무 말 없이... 그리고 금요일을 보내고 토요일을 보내고 사역을 마쳤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에 돌아왔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하나님의 역사도, 성령의 간섭하심도 전혀 없었던 그냥 그런 사역이었구나....
월요일 한시사무실에 가서도 그 허탈함을 지울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시미션 사역 팀장이었던 간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어 놓을 기회가 주어졌다. 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맘속에는 할말을 못하고 영영히 못 만날 곳으로 보내버린 연인의 심정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 내 귀에 자꾸 메아리쳐 왔다. “9월쯤 돌아가실것 같어. 총각 그때 올건가?” 할머님은 내가 마지막이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는 내가 마지막 이었다. 사단은 나를 이겼다. 예수믿는 가정이라는 15가구로 나를 속여 넘어뜨렸고, 할머님의 입으로 나의 마음을 무디게 하였던 것이다. 그 할머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까?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까? 하나님은 그 분에게 나를 보내신 것이었다. 인생의 마지막에 있는 분에게 바로 나를 보내신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요나와 같이 게으름을 부렸던 것이다. 한 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돌아오기 전날에 할머님이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몰라서 친척분들까지 모여들었다고 한다.
하나님 나를 책망하소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이 무감각한 나의 심령을 책망하소서. 주님께서 다시금 내게 힘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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