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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ociety/좋은글

[도올 김용옥 특별기고]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을 통박함 ①

by 길목 2004. 10. 27.
가련하다, 헌재여!
당신들은 성문헌법 수호자였거늘...
[도올 김용옥 특별기고]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을 통박함 ①

헌법재판소가 지난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자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 총선, 남북문제, 행정수도이전 등 주요 현안과 관련, 날카로운 분석으로 관심을 모았던 도올 김용옥 전 중앙대 석좌교수의 헌재 비판 글을 두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헌재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은 위헌이다. 법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법 없다. 법 위에 사람 없다 함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어 9차의 개정을 거친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통치체제와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규정한 기본법으로서 여타 모든 법에 대하여 상위를 점하며, 국가와 국민에 관한 기본원칙을 규정한 국가의 근본조직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지나간 왕조의 헌법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를 밝히는 근대입헌주의적 헌법이다. 따라서 헌법에 구현된 원리는 국민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천부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인도주의적이며 보편주의적인 원리를 떠나 특정한 이념이나 정파, 정략의 이권을 대변하기 위한 것으로 조작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인간이라는 보편자를 지배하는 자연법적 원리에 대한 전관적(全觀的)인 통찰이 없이 헌법은 함부로 해석되거나 조작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존속과 더불어 성장한 유구한 전통을 지닌 기관도 아니며, 1987년 5년단임제 현행헌법이 만들어지고 1988년 9월 1일 헌법재판소법이 발효되면서 탄생한 극히 역사가 일천한 기관이다. 그전에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헌법위원회가 명목적으로만 담당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9명의 재판관은 헌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며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위헌적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소지가 얼마든지 존한다. 따라서 법위에 사람 없다 함은, 헌법이 몇 사람의 자의적 해석에 의하여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명제이다.

2004년 10월 21일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에 의하여 낭독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재결정문'은 행정수도이전이라는 거국적 사태에 대한 순수한 법리적 규명에서 귀납된 결론이 아니라, 오로지 현 행정부가 행정수도이전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연역적 전제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모든 논리를 조작해낸 느낌을 강렬하게 던져주는 문장이다.

이 결정과정에서 헌법의 해석 자체가 위헌적 소지를 지니는 많은 억지춘향의 논리를 내포하게 되었으며, 또 이러한 논리는 우리국가의 질서근간 자체를 해체시킬 수 있다. 헌법의 해석이 몇몇 편협한 법관의 주관적 독단에 좌우된다면 법치의 근원이 흔들릴 수 있다.

[길다구요? 요약본 보기 클릭!] 도올 김용옥 "헌법재판소, 해체해야"

행정수도이전 못하게 모든 논리 조작한 느낌

헌법해석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전효숙·김영일 재판관을 제외한 헌재의 재판관은 우리나라 헌법의 근본원리와 성격,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역사·철학·문학의 모든 지식체계에 관하여 중대한 오판을 범하고 있다.

첫째, 수도의 단순한 소재지(所在地. locality)의 문제를 헌법의 명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의 존재이유가 아니다. 헌법이란, 국민주권의 원리, 자유주의 또는 기본권보장의 원리, 대의제의 원리, 권력분립 또는 삼권분립의 원리, 법치주의의 원리와 같은 추상적인 원리를 규정하는 최고규범이며 한 나라의 행정수도가 어느 특정한 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따위의 로칼한 문제를 다루는 법이 아니다.

그들은 헌법의 근원적 성격을 망각한 것이다. 20세기에 수도를 옮긴 나라 어느 한 나라도 헌법을 개정한 예는 없었다. 그래서 전효숙과 김영일을 제외한 7명의 헌재재판관들은 이러한 자가당착적인 비판을 회피하기 위하여 "불문헌법"이니 "관습헌법"이니 하는 엉뚱한 말을 둘러댔다.

그러나 이런 용어를 지어내는 동시에 그들은 더욱 극심한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들 자신이 평생을 일제식민지를 통하여 수용된 대륙법 계열의 성문법만을 우리나라 법질서의 근간으로 생각하는 성문법 전통의 옹호자로서 자처해온 사람들이며, 불문헌법적 유연성이나 유동성을 거부해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문법적 자구의 해석에 매달리며 독재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온 자들이, 이제 와서 통치권력이 권력행사를 삼가는 시대에 왔다고 해서 불문헌법 운운하면서 자의적 권력을 구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법구절을 넘어서는 불문의 민족대의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불문헌법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성문헌법론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불문헌법 운운하는가?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행정수도이전의 문제를 어떠한 무리수를 쓰더라도 헌법에 귀속시켜서 헌법개정이라는 어려운 입법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국민투표라는 대처방안까지를 원천 봉쇄시키려는 아주 악질적인 정치적 모략을 획책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뒤통수를 되맞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면하는 안전판이 설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수도의 설정과 이전의 의사결정은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다"라고 말한 그들 자신의 명제를 위배하면서까지, 정치적 이념과 정당의 이권의 노예로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근원적으로 국민을 불신하고 국민에게 여하한 논의의 기회조차 빼앗기 위한 기발한 방편으로써 "관습헌법"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날조해내야만 했던 어떤 허구적 논리로 빠져든 것이다. 국정을 국민 스스로의 결단이 아닌 보수적 관성체계의 손아귀에 장악케 하기 위해.

그들은 불문헌법을 말할 자격이 없는 성문헌법론자였다

둘째, 재미있게도 "불문헌법", "관습헌법" 논의를 우리사회의 현안과 관련하여 사회화시킨 것은 2004년 3월 29일 여러 미디어를 통하여 게재된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라는 나 도올의 글이었다.

그런데 당시 법조계의 몇몇 인사들이나 보수언론들은 불문헌법에 관한 나의 논의를 법에 대한 무지 운운하면서 부당하게 폄하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들이 내가 말한 "불문헌법"의 논의를 도용하여 행정수도이전의 원천봉쇄의 법리적 무기로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논의와 이들의 논의는 원천적으로 다른 것이다.

나의 논의는 헌법이란 반드시 헌법이 규정하고자 하는 정체(政體)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며 일시에 고착된 성문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분명 조선반도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발성체계의 기초적 약속에 의하여 일시에 기술된 것이다.

이 기술을 소쉬르의 말을 빌어 기표(記表. signifiant)라 한다면 그것은 분명 그것이 지향하는 기의(記意. signifié)가 있을 것이다. 노자(老子)는 도(道)라는 언어적 기표가 도(道)라는 의미체계 즉 기의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중론』을 쓴 용수(龍樹: 나가르쥬나)도 인간의 언어적 개념의 고착성은 영원히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역동적 의미를 표상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생각은 서양에서도 최근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사조로서 흘러가고 있다. 성문법적 기표의 고정성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해가는 역사적 현실의 기의를 다 담아낼 수가 없다. 그래서 성문법의 질곡으로부터 법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영국은 불문헌법의 유동적 개방성을 선호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헌재의 재판관들이 불문헌법을 들먹거리고자 한다면 그 소이연은 바로 우리사회를 법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근원적 인도주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불문헌법의 문제는 불문적으로, 즉 개방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헌재의 재판관들은 불문헌법을 빙자하여 성문법적 구속력을 강화시키는 데 악용한 것이다. 그들은 성문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수도의 문제를 불문헌법 운운하여 자의적으로 성문헌법화시킨 것이다. 그들은 현행헌법을 자의적으로 날조하는 위헌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불문헌법의 세계는 존재(Being)의 세계가 아니라 생성(Becoming)의 세계며, 법관의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역사의 세계다. 국민참여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헌재의 결정은 역사의 농단이며 권력의 횡포이다.

행정수도이전의 논의가 부적합하다는 그들의 판단은 그들의 양식에 속하는 문제라고 용납을 한다 해도, 국민투표로써 국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기 위하여 관습헌법 운운한 것은 용렬한 속셈을 드러낸 것이며 어떠한 변명으로써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참여 기회조차 원천봉쇄... 역사농단이자 권력의 횡포

셋째, 헌재 결정문은 처음부터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는 대전제를 내걸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으로부터 오늘날의 논리학에 이르기까지 대전제가 잘못되면, 그로부터 도출되는 모든 결론은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초적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모든 연역적 논리는 이미 그 대전제 속에 다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는 명제는 본질적으로 심판의 대상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판관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안건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지적 능력밖에 소유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헌법해석자로서의 자격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여태까지의 우리사회의 논의는 '수도이전'이 아니었으며 '행정수도이전'에 관한 것이다.

'수도이전'은 수도라는 개념의 전칭이다. 그러나 '행정수도이전'이라 할 때의 수도는 수도라는 개념의 부분칭이다. 이 양자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행정수도'란 말은 서울이 여전히 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하는 명제를 내포하는 것이다. 즉 행정수도이전은 수도를 이전하는 천도가 아니다.

바로 헌재 결정문에서 언급했듯이 고려는 중경(개성)·서경(평양)·남경(한양)의 3경제(三京制)를 유지했으며, 고구려도 평양성, 국내성, 한성의 3경제를 두었다. 발해는 5경을 두었고 통일신라는 5소경을 두었다. 다시 말해서 한 나라의 수도가 꼭 하나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도 행정수도가 와싱톤일 뿐이며, 뉴욕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도시로서 그 중심적 기능을 어김없이 담당하고 있다.

공주·연기지역으로의 행정수도이전이 수도이전을 의미한다는 헌재결정문의 전제는 전적으로 논리적 대전제를 왜곡한 것이다. 행정수도가 공주·연기로 이전된다 하더라도 서울은 여전히 경제·문화·예술·금융·교육의 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으며, 고려까지의 다경제(多京制)의 전통을 수용하여 두 개의 수도를 상정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공주·연기지역은 서울서 이제 고속전철로 한 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몇십년 전 강북과 강남의 거리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문명의 이기의 발전과 인간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다. 공주·연기가 와싱턴으로, 서울이 뉴욕과 보스턴을 합친 개념의 도시로써 연계적으로 발전한다 해서 당장 내일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도불가"의 허황된 저주의 언사를 남발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헌재결정문의 이면에는 깊은 증오의 정조가 도사리고 있다. 그 증오의 실체는 특정한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대적적 감정일 뿐이며 행정수도이전이라는 구체적 행위의 역사적 의의를 포괄적으로 형량하는 태도와 무관하다. 헌법의 해석은 특정 개인에 대한 증오로부터 출발할 수 없으며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서 악용될 수 없다.

정치권의 합의를 도출하는 방향에서 판결을 보류할 수도 있으며,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때는 대통령재량에 의하여 국민투표에 회부함으로써 국민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할 수도 있는 사안을, 굳이 안건의 성격을 왜곡하고 천도가 아닌 것을 천도라고 침소봉대하여 그릇된 대전제를 설정하고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는 결론을 유도한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2조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명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헌재재판관들은 정치행위를 한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술수다.

깊은 증오가 도사리고 있는 헌재 결정문

넷째, 헌재 결정이 다경제(多京制)를 일경제(一京制)로만 축소시키고, 그것을 수도이전이라는 그릇된 대전제 설정의 근거로 삼았다면, 그들은 조선왕조의 관례를 대한민국 현행헌법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관습헌법" 운운한 모든 근거가, "600여 년간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관한 규범적 사실"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의 법전체계와 그 문화적 관습을 적통으로 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맥락에서 논의되는 관습헌법은 그 논의 자체가 위헌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불문헌법의 전통을 지니고 있지 아니하며 1948년 7월 12일 제정된 헌법으로부터 출발한 성문헌법을 법질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기함으로써 3·1운동 이전의 어떠한 법통도 인정하고 있지를 않다.

그런데도 현행 성문헌법을, 그것이 거부한 조선왕조의 법통을 현재까지로 유효한 불문헌법의 근거로 삼아, 왜곡한 것은 명백한 위헌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들이 불문헌법의 근거로 삼은 조선왕조의 전통자체의 성격을 왜곡하고 자기들의 그릇된 정치적 관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오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지식은 너무도 천박하고 너무도 착오적인 해석학적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이 원용한 역사지식은 가련하고 빈곤한 레토릭일 뿐!

가련한 역사적 지식이여!

다섯째, "서울이라는 명칭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운운하여 마치 '서울'이라는 명칭이 현재의 서울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최소한 600여 년간의 당연한 규범적 사실의 근거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궤변을 펼치고 있으나, 현재의 서울이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로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1946년 8월 15일 이후의 사건이다.

광복 1주년 '서울시 헌장'에서 최초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전에는 서울의 공식명칭은 경성(京城. 케이죠오)이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합방한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 한 달 이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그전의 서울의 공식명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성(漢城)이었다.

이성계가 고려의 왕도인 개성에 정을 붙일 수가 없어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고 천도를 감행한 후, 태조 4년(1395) 6월 6일자로 선포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서울지역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한양(漢陽)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서울지역의 명칭은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로서 일관되게 불린 것이 아니며 한양→한성→경성→서울로 변하여 왔다. 따라서 헌재결정문이 주장하는 바 "계속성", "항상성", "명료성"은 하등의 논리적 근거가 없다.

단지 '셔울'이라는 순수 우리말이 한자로서 표기되지 않았다 해도 구어로서 존재했다는 것은 문헌적으로 확인될 수 있으나 그때 '셔울'이라는 것은 전혀 불문헌법의 근거 운운할 수 있는 의미맥락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고려말에 성립한 역관학습서인 『노걸대』 『박통사』의 언해본에 '셔울'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북경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두시언해』에도 '셔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두보의 시에 나오는 경(京)자 붙은 모든 도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서울은 모든 경(京)에 대해 쓸 수 있는 일반명사며 현대적 개념에서의 수도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현재의 서울은 조선시대까지 '셔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으며 한성일 뿐이었다.

그리고 헌재결정문은 "한성부가 경도(京都)를 관장한다"라고 한 『경국대전』 이전(吏典) 경관직 정2품아문 한성부조의 구절을 원용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성부는 6조와 같은 격의 한 중앙 행정부처일 뿐이며 한성부가 곧 수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춘추공양전』 이래 경도(京都), 경사(京師) 등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천자가 거하는 곳을 의미하며, 오늘날과 같은 국민주권 국가의 모든 활동의 센터를 의미하지 않는다. 수도라는 개념의 현대적 의미와 왕조적 의미에는 항상 깊은 단절이 있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할 문제 중의 하나이다. 왕도와 수도는 동일한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서울,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여섯째, 관습헌법의 연속성의 근거를 조선왕조의 『경국대전』이나 생활관습 관념에서 찾는다고 한다면 우리사회에는 앞으로 무수한 궤변들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호주제 폐지도 조선후기부터 조선인의 주요관습으로 등장한 장자상속제나 종법사회의 여러 인습에 근거하여 위헌으로 판결될 수 있을 것이며, 성매매처벌법도 조선시대의 공창제로부터, 아니 인류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한 유구한 전통이라는 관습에 의하여 위헌으로 판결되어야 할 것이다.

번 벌로의 『매춘의 역사』가 웅변하듯이 매춘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활동이 제약된 상황에서 유일한 독자적 생존의 길이었으며, 매춘부는 최초의 여성 자영업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위치는 일반부녀자들의 사회적 위치와 반비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성부의 관장범위를 5부 52방에 한정한다면 현재 강남을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도 위헌이 될 것이다.

일곱째, 서울이 유구한 600년 전통의 수도라는 관념이 관습헌법의 지위까지를 획득한다고 한다면, 동일한 논리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관념도 당연히 관습헌법의 지위를 획득하여야 한다.

행정수도이전의 논리는 박정희 시대로부터 시도되어 광범위한 대중의 인증을 얻었으며, 노무현이 선거공약으로 행정수도이전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행정수도이전이라는 새로운 관습은 수적 우세를 과시하며 대중의 지지기반을 이미 획득하였다.

그리고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국민의 주권을 대행하는 의회라는 대표기관에서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됨으로써 이미 대다수의 민의를 법제적으로 반영하였다.

현재 언론의 조작된 통계와는 달리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찬성의사는 국민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행정수도이전에 관한 의견을 보류하는 것은, 경제적 불안감으로 인한 현명한 시기의 선택에 관한 여러 함수를 고려하는 것일 뿐이며 상황이 변하면 그들의 판단은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관습헌법을 운운하는 자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낡은 관습헌법의 논리에 의하여 새로운 이 사회의 관습헌법의 정당성을 성문법적으로 원천봉쇄하려 한다면, 나주시장 신정훈의 주장대로 헌재판결은 죽은 역사와 관습이 산 사람의 미래를 차단하는 불행한 결정일 뿐이다.

법치 근간을 무너뜨리는 법조인 횡포에 맞서야

마지막으로, 헌재 소수의견인 전효숙 재판관의 명쾌한 논리를 재확인함으로써 나의 논의를 끝내려 한다. :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문헌법을 지닌 법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혹은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헌재의 판결에 대하여 무한한 반박의 논리를 고안해낼 수 있을 것이다. 헌재의 판결 자체가 무지막지한 궤변덩어리며 이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는 하등의 논리도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위헌적 판단에 의한 헌재의 위헌결정을 수용해서는 아니된다. 헌재의 재판관들을 탄핵하고 헌재를 해체시키는 조직적인 활동을 벌여야 한다.

새로운 관습헌법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광범위하게 조성하는 자유로운 활동을 벌여야 한다.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법조인들의 횡포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자신의 미래를 구성할 우리 자신의 법의 정신에 관해 자유로운 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 나 도올은 심원한 민족의 대계를 우려하는 충심에서 다시 한번 외친다.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은 위헌이다.

이제 이 외침의 본질적 의미를 보다 깊숙이 탐색하기 위하여 나의 "사람 위에 법 없다"라는 제2의 명제를 분석해야 한다. 사람 위에 법 없다 함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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