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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ociety/좋은글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by 길목 2003. 9. 5.
화투 48장의 뜻과 유래  2003-09-04  


오늘은 화투 이야기를 할 까 합니다. 웬 화투냐고요?  심각한 토론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잡학'(?)을 통해 정신건강(?)과 교양(?)을 증진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 의미의 '진짜 가벼운 타치'로 동양화 48폭의 유래와 의미를 다뤄볼까 합니다.
   '고추'와 '화투'의 공통점

역사적 문물은 서로 주고 받으며 발전하듯이 한국과 일본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겠어요? 지리적 인집성 , 역사적 특수관계때문에 더욱 그러했겠지요. 그 가운데 혹시 "일본으로부터 건네받았지만 정작 한국에서 꽃 피운 것, 시작은 일본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문화로 정착된 것"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여러 의견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고추'와 '화투'를 떠올립니다. 생각하는 스케일이 고작 그것뿐이냐고 힐난하시는 분도 있겠지만요 .

   '시작은 일본' , '꽃핀 곳은 한국'

  먼저 고추는 아시다시피 포르투칼에서 16세기 일본에 전해진뒤 '임진왜란'때 한국에 건너온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이지요.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김치를 포함한 한국음식에 고추가 빠진 것을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을 '한국음식의 대명사'로 꽃피워낸 대표적 사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가 '화투'입니다. 화투는 '19세기경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라고 합니다만 정작 일본에서는 없어진 놀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명절때는 물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으례 필수로 여겨지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국인의 독창성(?)으로 부지기수의 '고스톱'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곧 추석입니다. '화투판 시즌'을 앞두고 화투 48장의 뜻과 뒷 얘기를 소개할 까 합니다.

      '꽃 그림 놀이'라는 뜻의 語源                      

그럼 화투를 옆에 놓고 직접 봐가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화투를 한자로 쓰면 '花投'입니다. 원조격인 일본에서는 화찰(花札-하나후다)라고 부릅니다. 꽃이 그려진 카드를 던지는 게임, 또는 꽃이 그려진 카드를 맞추는 게임이라는 뜻이지요. 그럼 화투가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때 화투의 48장, 특히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1월- '복과 건강'을 담은 松鶴

1월 - 맨 먼저 솔(松)과 학(鶴)이 나오지요? 먼저 솔부터 설명할까요? 일본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1주일동안 소나무(松-마쯔)를 집앞에 꽂아두는 풍습이 있습니다. 카도마쯔(門松)라고 불리는 세시풍속으로 福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각 집마다 각 회사마다 변함없이 이뤄지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런 유래가 소나무가 1월을 장식하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1월 화투에 솔과 함께 등장하는 게 학입니다. 우리도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치듯이 학은 일본에서도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결국 1월의 화투는 '福과 건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2월 - '우메보시'에서 보는 일본인들의 '매화'觀

2월 - 무슨 꽃입니까? 그렇죠. 매화입니다. 2월은 일본에서 매화 축제가 벌어지는 때입니다.꽃도 꽃이려니와 특히 열매, 즉 매실로 만든 절임인 우메보시(梅干)는 일본인들의 입맛을 돋구는 대표적 일본음식입니다. 일본인을 어머니로 둔 어느 한국인의 수기에 보면 "한국에 살던 그 일본인 어머니가 "죽기 전에 '우메보시'가 먹고 싶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만큼 매화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꽃입니다. 화투의 2월을 매화가 장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또 매화나무에 앉아있는 새는 꾀꼬리류의 휘파람새(鶯-우구이쓰)라고 합니다. 일본의 초봄을 상징하는 새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우리의 꾀꼬리는 일본에서는 '고려 꾀꼬리'(高麗鶯-코라이 우구이쓰)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뒤집어 해석하면 '우리나라의 꾀꼬리'는 일본에는 거의 없는 텃새라는 이야기가 되네요. 2월의 새를 잘 보시죠. 우리 꾀꼬리와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 제 눈에는 그게 그거인 것 같이 보입니다만...  

    3월 - 3光의 '사쿠라를 담은 바구니'는?

3월 - 3월은 잘 아시다시피 벚꽃, 즉 사쿠라(櫻)입니다.  3광(光)을 한 번 보실까요? 대나무 바구니에 벚꽃을 담아놓은 것 처럼 보입니다만 '만마쿠'(慢幕)라고 부르는 막이라고 합니다. 각종 式場에 둘러치는 전통휘장으로 쓰여진다고 하네요. 물론 제가 일본에서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4월 - '등나무'와 '비둘기'는 전통명가의 상징  

4월- 검은 싸리나무처럼 보여 보통 '흑싸리'라고 부릅니다만 원래는 등나무(藤-후지) 줄기와 잎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등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가마의 장식 또는 가문의 문장(紋章)으로도 자주 쓰이는 나무입니다. 일본에서 후지(藤)로 시작하는 이름들, 예를 들어 후지모토(藤本),후지타(藤田),후지이(藤井)등의 이름이 많은 것도 '등나무'가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나무인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이지요.

  또 4월에 그려진 새는 비둘기(鳩-하토)입니다. 일본에서 비둘기는 '나무에 앉더라도 자신의 부모보다 더 낮은 가지에 앉는 예절바른 새'로 평가됩니다. 가문의 문장(紋章)에 쓰는 엄숙함이 담겨진 등나무인만큼 거기에 앉는 새도 '예절의 상징'인 비둘기를 썼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요.

     5월- '초'가 아니라 '창포'랍니다

5월- 우리는 초(草), 즉 난초라고 하지만 실제는 '창포(菖蒲-쇼우부)라고 합니다.  5월의 풍취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우리하고 비슷하죠. 우리도 5월5일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감는 풍속이 있으니까요.

     6월 - 향기없는 모란에 왠 나비?

6월 - 모란입니다. 일본에서는 '보탄'(牧丹-보탄)이라고 해서 꽃중의 꽃, 고귀한 이미지의 꽃으로 인식됩니다. 여기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발견됩니다.  한국에서는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해서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란의 향기를 확인했는지 나비를 그려넣었습니다.  6월의 '열끝 자리'화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틀림없이  '나비'가 앉아있습니다.

     7월 - 멧돼지의 등장이유는?

7월 - 속칭 '홍싸리'라고 하죠. 실제로도 7월의 만개한 싸리나무(萩)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4월의 '등나무'를 '흑싸리'라고 오해(?)하는 것도 4월의 꽃이 이 7월의 꽃 생김새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싸리나무를 지나고 있는 동물은 멧돼지(猪-이노시시)인데 왜 멧돼지가 7월에 등장하는지는 아직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혹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형식으로 첨가해주시기 바랍니다.

     8월 - '한국과 일본의 그림이 달라요'

  8월 - 속칭 '8월의 빈 산(八空山)'이라고 합니다만 화투 48장중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뒤 그림이 바뀐 것이 이 8월이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화투의 8월에는 '가을을 상징하는 7가지 초목 (秋七草)' - 억새, 칡, 도라지등 -이 그려져 있었는데 우리의 지금 화투에는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밝은 달밤과 세마리의 기러기가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느쪽이 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지요?

     9월 - '일본 중앙절'과 '9쌍피'에 담겨진'長壽'

  9월 - 국화이죠. 국준(菊俊)이라고도 합니다만 9월에 국화가 등장한 것은 일본의 중앙절(9월9일)관습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되면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면서 무병장수를 빌었다'고 합니다. 9월의 '열끝자리-흔히 쌍피로 대용되는 그림'을 보십시요. 목숨 '수(壽)'자가 적혀있지요? 무병장수를 빌었던 9월 중앙절 관습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일본 왕실의 문양도 '국화'입니다. 무병장수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렇다면 옛부터 '왕이건 상것이건 그저 오래살고 싶은 욕망'에는 차이가 없었나 봅니다.

      10월 - 사슴은 사냥철의 의미?

10월 - 단풍의 계절입니다. 단풍과 함께 '사슴'이 등장하는 것은 사냥철의 의미라고 합니다. 단풍에 사슴이 곁들여진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인데 반해 단풍철에 사슴사냥을 연상하는 것이 옛 일본인들의 정서였던가 봅니다

      11월 - 일본에서는 '똥'이 12월이래요.

11월 - '오동(梧桐)'의 '동'발음을 강하게 해서 속칭 '똥'이라고 부르죠. 원래 일본 화투에서는 이 '똥'이 '12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동(梧桐)'을 일본말로 '키리'라고 하는데 '끝'을 의미하는 '키리(切)'와 발음이 똑같아 마지막달인 12월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와서 11월로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똥광(光)'에 있는 닭대가리 같은 동물은 무엇인지 아시죠? 예, 왕권을 상징하는 전설속의 동물, 봉황입니다

      12월 - 비'光'의 갓 쓴 사람은 도대체 누구?  

12월 - 12월의 광(光)에 나오는 갓 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일본의 유명한 옛 서예가라고 합니다.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오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고 '득도'했다는한  서예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비광(光)을 잘 들여다 보십시요.  다른 광(光)들과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옵니까? 틀림없이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네. 그렇죠.  다른 달의 광(光)은 '光'字가 아래쪽에 적혀있는데 이 비광(雨光)만큼은 '光'字가 위쪽에 적혀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비광(雨光) 아래쪽을 보면 '노란 개구리'가 보이시죠? 노란색이지만 '청개구리'라고 생각하면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의 설화에 따라 아래로 가야할 '光'字를 거꾸로 위에 적어넣었다는 가설도 가능합니다. 물론 진짜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人情이 담겨야 한국적 화투  

일본인들에게 '화투'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모른다'고 합니다. 일본에 그런게 있느냐는 반문도 많이 듣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일본인들도 '화투는 한국인의 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스톱 망국병'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쨋든 화투는 한국인 특유의 분위기가 함께 해야 제 맛입니다. 서양의 포커처럼 침묵속에서 하는 놀이가 아닌 조금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즐거움이 함께 해야 제맛입니다.

곧 다가올 추석때면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가족단위, 친척단위의 인정(人情)과 감사의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동시에 '동양화 48폭에 얽힌 이야기'도 안주로 곁들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1월-12월의 이야기에는 jstar33@hanmail.net님을 비롯한 인터넷상의 여러 글들을 참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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