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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형성사 대한기독교서회. 박창환
이길주 전도사
1.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1)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에 여러 방법으로, 마지막의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셨다.(히브리서 1:1-2)
2)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역사화 (인간이 보고 듣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3) 역사화의 문제 :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시대 그 방법으로 (성서의 계시를 주시던 때는 4000년전의 시대 -> 신화적인 우주관, 미개하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시대, 그 시대의 지식과 언어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표현하심)
4) 표현방법의 문제 : 예수님이 비유로 복음을 설명하셨듯이, 성경도 시, 편지, 비유, 격언, 신화, 역사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로 그 방식에 맞게 읽어야 한다. 또한 그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2.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가. 구약성서의 세 구분
1) 기원전 180년경 ‘예수 벤 시락’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구약성서를 율법서(토라), 예언서(느비임), 성문서(케투빔)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총 24권으로 된 구약성서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가) 율법서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나) 예언서 8권: 전기예언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후기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선지-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다) 성문서 11권: 시편, 잠언, 욥기, 전도사, 아가, 룻기, 예레미야 애가,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 다니엘
2) 기원후 90년 얌니야 회의에서 오늘의 성경 39권으로 된 구약성서를 정경으로 결정하고 선포하였다
나. 율법서의 형성
1) 평가: 율법서 > 예언서 > 성문서 순으로 가치있는 책으로 평가
2) 저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러주어 쓰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함.그러나 모세가 쓴 것이 아니다. 합성되고 발전되어 수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cf. 예수님 모세 저작권 인정 -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사건과 비교 이해)
가) 모세 이외의 다른 사람도 기록한 증거
(1) 모세가 죽은 후의 일(신34)
(2) 이스라엘의 왕이 형성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저자(창36)
(3) 지명 ‘단’은 ‘라이스’로 불리다 사시시대에 ‘단’이 됨(창14:14, 삿18:29)
(4) 블레셋 사람은 기원전 1200년경에 등장 (창21:34; 26:14-18; 출13:17)
나)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묘사한 증거
(1) 브엘세바 지명에 대한 기원 설명(창21:31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사이에서; 26:33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서)
(2) 벧엘 지명에 대한 기원 설명(창28:19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 35:15야곱이 몇 해 후에 밧단아람으로 돌아올때)
(3) 하갈이 추방되는 이야기(창16:6-이스마엘을 낳기전; 21:9-이스마엘이 커서 소년이 되었을때)
(4) 창조설화(창1 세상만물과 동물까지 창조된 후; 창2 남자, 동물, 여자 순으로)
(5) 홍수이야기(창6:19 짐승을 한 쌍씩 방주안데; 7:2정결한 동물 일곱씩 부정한 동물 한쌍씩)
다) 오늘의 형태로 작성한 사람들이 자료를 정직하게 보존하려는 생각으로 두가지를 다 나열한 것으로 평가됨.
3) 기록방법: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말씀하셨고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 구전이 언제 어떻게 문서화 되었는지 알수 있는 방법 없다.
가) 5경(율법)의 문서화에 대한 가설
(1) 남유다 솔로몬왕 사망 후에 이스라엘의 역사 문서 생김(주전 950년경)
①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름
② 유다와 이스라엘의 남쪽왕국에 관심 집중
③ J 문서라 호칭. 여호와(Jehovah) J, 유다(Judaea) J 의 의미
④ 하나님을 귀여운 어린이 같은 단순성을 지닌 분으로 생각하며 묘사함 창2:7, 창2:22, 창3:8, 창7:16
(2) 북이스라엘에서 또 하나의 문서 생김(주전 750년경)
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시기 까지는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르지 않는 문서
② 창조기사부터 시작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역사부터 시작
③ 북 이스라엘 나라에 관심 집중(출애굽이야기-여호수아, 야곱이야기-벧엘과 세겜, 요셉이야기-르우벤 주도적)
④ E 문서라 호칭. 에브라임(Ephraim) E, 엘로힘(Elohim) E 의 의미
(3) 북 이스라엘이 주전 721년경 멸망후 J 와 E 문서 병합되었음
① 두 문서를 정직하게 그대로 소개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음
② JE 문서라 호칭
(4) 요시야 왕의 대혁명때 발견된 책(주전 621년)
① 이때 발견된 책이 신명기(Deuteronomy)
②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짐
③ 정경형성의 시작 발단
④ D 문서라 호칭
⑤ 이 시대에 이미있었던 JE 문서와 D 문서를 병합하고 모세의 죽음 이전이야기속에 삽입
(5) 이후 형성된 문서가 있음(주전 550년경)
① 거룩에 대한 규칙과 원리를 규정한 것 (레17-26)
② H 문서로 호칭. Holiness Code(거룩한 법전)의 H
(6) 포로 시대와 그 이후 문서 생김(주전 444년경)
① 포로 이후 유대인 고유의 종교문화사회를 확립하려는 시도. 이를 위해 제사장 무리와 학자들이 선민 역사의 줄거리와 그들의 종교제도, 성전 의식법과절차들을 수집, 편찬하기 시작했음
② 주로 제사장 무리에 의해서 작성되었음
③ 엄숙하고(창1창조), 종교적 제도나 절기의 기원 이야기, 족보중요(계보의 성경이 중요했기 때문)
④ 이 P 문서를 골격으로 하고 다른 부분들이 덧붙여져서 5경이 형성되었다고 봄. 또한 에스라 시대에 완성되었고,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읽어 준 것이 바로 이 문서(느8)
⑤ P 문서라 호칭. Priestly Document(제사장 문서)의 P
(7) 이후 기원전 400년경에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렇게 다섯 권 모세5경이 제일 먼저 성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음(증거: 기원전 250년경 애굽왕 필아델퍼스가 구약성서를 헬라어로번역할 때 모세5경만을 했다/ 느헤미야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이 분리될때 5경만을 사마리아글자로 번역/ 느8-10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었다는 기록)
다. 예언서의 형성
1) 예언자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개념이지 시간개념을 가지고 미래의 것을 말하는 의미가 아니다.
2) 포로시대와 그 이후시대에 전기예언서의 역사와 후기예언서의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에게 희망이었고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가) 전기예언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 하나님의 구원행위 발견하고 신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예언자들의 해석이 필요 했을 것. 점진적으로 모아지고 기원전 650-550년경 완성
나) 후기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 - 전기예언서 이후 예언자들이 남기고 그의 제자들이 첨가해서 완성.
3) 말라기(주전 5세기경)에 이르러 예언의 소리가 끊겼다고(말4:5) 판단. 때문에 예언자들의 글들을 극히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수집하고 보존.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수집되고 정경으로 되었다.
4) 주전 2세기경에는 예언서가 정경으로 확정되었다고 판단됨(다니엘서는 주전167년 작품인데, 확실한 예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다니엘서가 예언서에 속하지 않고 성문서에 들어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나타날 무렵에는 이미 예언서들이 종결되고 확정되어서 아무리 훌륭한 내용의 예언서라 하더라도 다른 것을 첨가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함.
라. 성문서의 형성
1) 성격이 다른 여러책들이 모여서 이룬 것으로 내용상 동질적인 것들은 없다. 성문서들은 개별적으로 대중의 수납에 의해서 성서로 간주된 것이지 율법이나 예언서처럼 공식적 결정에 의해서 성경 정경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다.
2) 회당에서 공중예배때 사용된 것은 율법서와 예언서였지 성문서는 아니었다. 곧 성문서는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가) 그 당시는 인쇄기술이 없어 필사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거나 읽혀지지 않는 것들은 오래가지 않아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따라서 성문서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인기 있는 책
나) 예언적 영감이 끝난 시대이후의 저작물은 정경에 들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책의 경우 책의 저자가 익명일 경우, 그 책을 과거의 어떤 위대한 인물이 쓴 책으로 돌려진다면 정경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1) 룻기를 사무엘의 저작으로
(2) 모든 시편을 다윗의 시편으로
(3) 열왕기와 애기를 예레미야로
(4) 잠언과 전도서를 솔로몬의 글로
(5) 욥기를 모세의 글로
(6) 에스라, 느헤미야를 에스라의 글로
다) 기원전 2세기 - 기원후 1세기경 이전에 성문서가 확정되었다고 보여짐(마카비2서의 서두 ‘다윗의 책들’이라는 언급, 기원전 132년 경 집회서의 저자 예수 벤 시락의 손자가 ‘율법과 예언자들과 또 그들의 발자취를 따른 다른사람들로 말미암아 전수된 위대한 일들에 대해서 말함)
마. 최종 구약 성경 완성
1) 기원후 90년경 얌니아에서 유대 랍비들과 학자들의 권위 있는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서 구약성서의 책들이 최종적으로 낙착되었다. 오늘날의 39권과 같은 형태로 결정되었다.
2) 정경에 대한 논란이 되었던 성경: 잠언(난해한 윤리사상 잠26:4, 57:7-20), 에스더(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나타나지 않음), 전도서, 아가서, 에스겔서
3) 구약성서에 속하는 책들이 어떤 회의를 통하여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이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회의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확인하여진 것이다.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성경이 정경이 된 것이다.
3. 신약성서의 형성
가. 1세기 교회는 신약 정경이 필요하지 않았다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정경을 가지고 있었고 구약성경이 그들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 되는 정경이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가 새롭게 그들 삶의 근거가 되었다.
2)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보고 경험하였거나, 직접 전해들었던 자들이었기에 그것들을 문서로 남길 필요성이 없었다. 그와 더불어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직접 본 자들의 해석이 필요하게 되어, 사도들이 두루 다니며 그 사건을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3)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에 대한 강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서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4) 오순절 성령사건 때문에 성령안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새로운 성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나. 구두 전승의 신빙성
1) 적어도 30년이상은 예수의 복음이 구두로 전승되었다.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이 기원후 60년 이후 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사후의 30년 이상 구두로 복음이 전달되었다.
2) 구두로 전승되면서 왜곡되거나 확대되는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
3) 신뢰할만한 이유
가) 고대 히브리 랍비들, 성서를 거의 다 암송(사서삼경, 천자문 외는 것처럼)
나)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 계속적으로 반복 설교됨. 따라서 그에 다른 내용이 전해지면 곧바로 지적되고 공격을 받게 되었을 것. 공통적인 기억에 의해서 내려오는 것이기에 개인이 조작하거나 왜곡할수 있는 가능성 거의 없음
다. 구전 시대의 종결과 신약 문서의 형성개시
1) 기원후 70년경에 사도들이 거의 죽음. 따라서 그들의 증언을 들을수가 없어서 문서로 증언할 필요성 대두.
2)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됨에 따라, 문서로 남겨 전해주어야 하는 필요성 대두.
3) 이단이나 탈선적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표준적이고 공적인 문서로 된 복음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4) 예수님이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였다. 즉 구약의 예언의 성취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라. 복음의 형식
1)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단편단편의 지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교훈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 시간을 거치면서 어느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어 복음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예수님에 관한 단편적인 자료들은 어떤 형태로 있었을까?
가) 격언적 말씀
(1)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리차
(3)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 함이다
나) 설화 또는 이야기
(1) 연못가의 병자 고친 이야기
(2) 풍랑 잔잔케 하신 이야기
다) 가르치는 말씀
라) 거룩한 전설
(1) 예수님의 탄생이야기, 유아시절 이야기
마) 신화-사람의 언어로 설명이 안되는 이야기
(1) 변화산 사건
(2) 시험당하신 사건
마. 신양성서의 실제적 출현
1) 구전시대가 끝이나고 문서시대가 시작되자, 예수님에대한 문헌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눅1:1 참조) -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맛디아복음......
2) 이런 많은 문서들 중 왜 어떤 것은 성서로 채택되고 어떤 것은 버려졌을까?
가) 공중예배에서 읽혀진 것만이 성서로 채택
나) 사도적 권위를 가진 것이어야 성서로 채택-사도의 저술이든지 사도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저술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직접뽑으시고 가르치시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목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바. 바울 서신의 집성
1) 신약성서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바울서신이다.
2) 바울서신은 주후 90년경에 에베소에서 집성되었다.
가) 바울서신 집성자에 대한 가설
(1) 바울서신 중 빌레몬서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내용의 짧은 편지인데, 그것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오네시모가 바울서신을 집성했기 때문이다. 바울 사후 50년경 이그나시우스가 보낸 편지에 에베소 감독이 오네시모라고 표현. 오네시모가 바울의 편지들을 모아 집성하면서 자신에 관한 기록도 넣어 도둑질하고 달아났던 노예였던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변화되었다라고 표현하려고 함
(2) 바울이 죽자 바울이 남긴 편지를 모아서 읽기 위해서
사. 복음서의 형성과 집성
1) 여러 복음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4개의 복음서만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는가? 그것은 읽는 중에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과 영이 통하는 중 자연히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왜 비슷한 내용의 복음서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그대로 가지게 되었을까?
2) 교회가 사도적 증언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 모두 사도의 권위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던 것이다.
아. 그 밖의 책의 수집
1) 사도행전-복음서와 서신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줌으로 인정됨
2) 공동서신-시간을 두고 오랜기간에 걸쳐 수집되었고 인정되었다.
자. 성서로서의 인정
1) 사도의 저작이고 사도와 연관된 사람들의 저작이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 인정받고 거룩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기원후 140년경 마르시온이라는 이단이 성경을 제거하려는 이유 때문에 성경의 정경화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2) 마르시온은 영지주의자였는데, 그는 바울을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가 멋대로 수정한 누가복음서만 인정하였으며, 자기 자신이 저작한 것을 성경으로 만들었다. 이때까지 교회는 공식적인 정경을 가지고 있지못하였기 때문에 마르시온 사건을 계기로 정경의 목록을 작성하게 되었다.(기원후 170년경) 그 정경 목록을 이후 그 문서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무라토리 정경목록’이라고 부른다.
3) 이후 성경을 늘리려는 주후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몬타누스 때문에 교회는 주후2세기 말엽에 신약 정경을 한정하고 성서의 정경화 작업을 끝났다고 합의하게 되었다.
4) 이후 3-4세기에는 문제가 된 책들을 가려내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하여 더러는 정경으로 인정받고 더러는 외경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기준에는 사도의 저작이거나, 사도와 관련된 사람의 저작이어야 했다.
5) 기원후 393년에 힙포 레기우스에서 대회로 모여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4. 5세기 이후의 정경문제
1)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외경을 중심으로 선행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성자의 공로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었던 사실을 발견하고 외경을 배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후 루터와 칼빈을 따라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오늘 한국의 교회들도 외경을 인정하지 않고 구약39권과 신약 27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5. 성서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가. 옛날의 책 만드는 방법
1) 책의 재료: 파피루스, 가죽종이
2) 제본방법: 두루마리, 코덱스
3) 사본만드는 방법: 대본을 놓고 한자한자 기록, 대본을 큰소리로 읽고 사서 여러명이 한꺼번이 기록하는 방법
4) 이런 사본제작 과정을 통해 성경의 첨삭이 있었음
가) 주기도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후대에 추가
나) 마9:29: 금욕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유가..’에서 금식을 추가하였음
다) 실수로 고의로 사본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차이가 생긴 것이 사실임
라) 오늘날 우리는 원문 비평학자들의 노력으로 여러 사본을 살펴 연구한 결과 원문에 가까운 성경을 가지고 있게 됨. (매우 기쁜일이지요?)
나. 신구약 고대사본
1) 성서가 문서화되었지만 파피루스나 가죽종이에 기록이 되어 원본을 오래 보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사본을 만들어 보관하고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성서의 원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그 사본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가) 기원후 9세기 맛소라 사본
나) 기원후 1세기 쿰란 사본(1947년 사해연안의 쿰란동굴에서 발견)
다) 기원후 4세기 시내산 사본(1859년 시내산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
라) 기원후 4세기 워싱턴 사본(1906년 프리어가 이집트 고물상인에게 산 4복음서)
마) 기원후 3세기 사본(1930년 영국의 골동품수집가 비이티가 발견)
바) 기원후 2세기 사본(1935년 고문서 학자 로버츠가 발견)
사) 기원후 3세기 사본(1956년 스위스 사람 보드머가 발견)
아) 지금까지 발견된 신약사본파피루스 98개/ 코덱스 5000개 이상
다. 고대역본
1) 히브리어로 된, 헬라어로 된 성경이 다른 언어적 환경에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야 했다.
가) 기원전 280년경-칠십인역(모세5경만을 먼저 헬라어로 번역, 70명70일 유래)
나) 기원후 2세기경-수리아역, 라틴어역
다) 기원후 3세기경-콥틱어역
라) 기원후 4세기경-벌게이트역(유명한 성서학자 제롬이 헬라어사본을 라틴어로 번역, 가톨릭교회의 공식 성서로 지정)
2) 기원후 13세기경 스테판 랑튼-벌게이트역에다 장 구분을 함(오늘날까지 사용)
3) 기원후 1546년 트리엔트회의에서 라틴어 새번역 제작하여 1592년 완성. 오늘날까지 사용
라. 초기의 인쇄본 성서
1) 15세기 중엽에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사본시대가 끝이나고 성서가 처음으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 1456년 구텐베르크에 의해서 출판된 제롬에 의해 편찬된 벌게이트 라틴성경이 인쇄된 처음 성경이다.
나) 1515년 에라스무스가 10세기 이후의 사본을 참고로 해서 헬라어 신약성서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서둘러 출판하는 까닭에 정확하지 않은 사본들을 참조하여 가치성을 잃었다.
마. 현대 비평판 성서와 한글성서
1) 1910년에 번역 출판된 구역성서까지는 주로 영어번역과 한문성서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과는 많이 다르다.
2) 19세기 이래 성서 사본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성서비평학의 발달에 따라 많은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원문에 접근하는데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 대하여 많은 비평적인 노력 끝에 1977년에는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가 가장 권위있는 구약 원문 성서로 인정받게 되었다.
3) 1937년에 현행 개역성서 출간
6. 한국 성서의 번역사
가. 해방 이전
1) 구츨라프 선교사가 1832년에 중국에서 한문 성서를 가지고 와 왕과 신하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2) 토마스 선교사가 1865년에 황해도 해안에서 한문 성서를 전해주었다.
3) 1873년 로스 선교사가 한국인 서상륜을 만나면서 한국말로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1882년에 처음 번역된 것이 누가복음이었다.
4) 1887년 로스 선교사가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함께 신약성서 전부를 번역하였다. 그 이름이 예수성교전서이다.
5) 1882년 한국문호가 개방되면서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1887년에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893년에는 공선 번역위원회를 조직하였다.
6) 신약성서의 경우 1900년에 신약전서가 완전히 번역되었다. 이후 개정의 필요를 느껴 1904년 개역되었고, 1906년에는 그것을 재수정하여 결정본으로 삼았다.
7) 구약성서의 경우 1910년에 완역되어 1911년에 신약성서와 함께 ‘성경전서’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원문번역이 아닌 영어, 한문 성경을 번역한 것이었기에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다.
8) 이후 1912년에 개역의 필요성을 느껴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937년 드디어 ‘성서개역’이 완성되었다.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판 성경이 바로 그것이다.
나. 해방 이후
1) 이후 성서공회에서는 1960년에 새번역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중학교 이상의 학생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때 번역에는 최신 비평판 헬라어 성서들을 대본으로 하게 되었다. 일을 진행한 결과로 1967년 신약성경의 새번역이 출간되게 되었다. 새번역 신약성서 출판을 끝낸 성서공회는 1968년 신구교 공동으로 구약성서 번역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면서 67년 완성된 신약 새번역은 개신교를 위한 것이니 신구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번역도 새롭게 만들자고 합의하고 1971년에 신약 공동번역성서를 출간하고, 구약도 완료하여 1977년에 공동번역 성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2) 공동번역이 출간되자 천주교에서 환영하고 잘 사용한 반면, 개신교에서는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신약 새번역에 맞는 구약을 새롭게 번역하기로 하여 1993년에 표준새번역 성경을 출간하였다.
3) 1999년에는 공동번역 성경에 대한 오류를 잡고 달라진 한글맞춤법에 맞게 공동번역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4) 이후 대한성서공회는 2001년에 표준새번역 개정판을 내놓았다.
5) 1937년에 최종 완성된 성경전서는 이미 70년이상이 지나서 표기법과 번역상에 문제가 있어서 새롭게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1998년 73000군데를 고쳐서 개역개정판 성경을 발행하였다.
6) 개역개정판의 번역에 대한 실례를 아래에 실었다.
가) 창세기 16:12개역한글판 :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개역개정판 :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원어의 숙어적 의미를 따랐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두고 한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말이다. 「개역」은 NAS(New American Standard version)의 이해를 따라 이스마엘이 그의 모든 형제가 살고 있는 땅의 “동방(東方)에서 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방에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알프네”는 문자적으로는 “…의 얼굴 앞에서(in the face of)”를 뜻하나 숙어적인 의미는 “…를 대항(對抗)하여(in defiance of)”, “……과 적대(敵對)하여”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사의 말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삭의 후손과 늘 적대관계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 숙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 앞에서” 혹은 “동방에서”라고 하면, 문맥과 숙어적 의미를 둘 다 무시하는 것이 된다.
나) 마태복음 5:28개역한글판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개역개정판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원문의 의미를 중요시하였다 원문에서 “본다”는 동사 “불레포”에는 차서(次序)의 의미가 전혀 없고, 단지 “나쁜 욕망을 가지고 여자를 보면”이란 의미인데 반해서, 「개역」의 문체에는 시간이나 순서가 중요한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불레포”의 시제(時制)가 현재분사, 능동, 주격, 남성, 단수형인 “불레폰”이므로 이 구절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로 옮기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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