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예배순서에 있는 '묵도'가 일제 식민주의의 잔재인가? >
우연히 한 목사님께서 묵도가 일제 신사참배로 인한, 더 앞서서는 일제 식민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좀 이상하다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묵도 순서가 신사참배의 영향아래 생긴 것이라는 논의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바탕에서 우리 예배에서 묵도 대신에 예배로 부름, 나아감 등의 순서로 이름이 바뀌어졌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래 제가 찾은 자료를 정리한 글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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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전 고요히 묵상하며 예배로 나아가는 묵도(默禱), 이 순서가 1912년 일왕의 죽음을 기리며 시작된 일본 국가 의례로 인한, 신사참배의 잔재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로 부름 등의 순서로 교체하자는 논의가 있어왔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배중의 묵도는 그렇게 시작된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묵도는 일본이 강요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을 대면하고자 했던 우리 신앙 선배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 1905년 감리교 찬미가 서문에 나타난 묵도
묵도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도 전인 1905년 감리교 『찬미가』 서문에서 이미 발견됩니다. 이 예배 지침에는 "회당에 들어온 즉시 엎드려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례 시간은 미리 쟉뎡로 시쟉고 교우들이 회당에 드러온 후에 즉시 업드려 긔도 지니라."
뎨일: 풍류로 노 (제일: 풍류로 노래함 - 풍금 반주)
뎨이: 교우들이 서셔 찬미가를 노 (제이: 교우들이 서서 찬미가를 노래함)
뎨삼: 긔도 (제삼: 기도)
뎨사: 셩경 낭독 (제사: 성경 낭독)
뎨오: 목사가 텬쥬의 도를 젼파고 (제오: 목사가 하나님의 도를 전파함/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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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00년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기록
1920년 5월23일 동아일보의 기록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득도한 1860년의 신비로운 순간을 묘사하며 '묵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庚申(경신) 四月(사월) 初五日(초오일)에 龍潭(용담)에서 默禱(묵도)를 하다 하나님께 親(친)히 道(도)를 받드니 '人乃天(인내천)'이라는 宗旨(종지)로 우리의 敎(교)가 發生(발생)하야
이는 묵도가 일본에서 수입된 외래어가 아니라, 이미 우리 민족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이것이 신사참배에서 비롯된 의식에서 비롯된것이었다면 민족의 종교였던 천도교에서 사용했을리 만무합니다.
3. 1921년 기독교인들의 일상적인 습관
가장 감동적인 증거는 1921년 3월1일자 기사, 3.1운동 2주년기념으로 쓴 서대문형무소의 기록입니다. 3.1 운동으로 투옥된 신앙의 선배들 중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감시 아래서도 "말없이 묵도를 올리고 성경을 읽으며" 그 고난의 시간을 견뎌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교도는 말업시 默禱(묵도)를 올니고 聖經(성경)을 항상 읽으며 哲學(철학)이나 修身(수신)에 관한 것, 語學(어학)에 관한 것이 만슴니다."
4. 1922년 상해 임시정부 주변의 '평화의 묵도'
1922년 상해에서 열린 평화기념예배에 참관한 기록입니다. 1차세계대전 종전 4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예배에서 '11시 정각 종소리에 맞추어 회중이 2분간 묵도로 기도를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十一點(십일점)을 땡치자 會衆(회중)이 起立(기립)하야 二分間 默禱(이분간 묵도)하는 것과
상해에서 열린 예배였기 때문에 일제의 영향 아래 묵도가 생겨났다기 보다 오히려 서구 선교사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의 의식이 한국에서도 행해졌음을 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묵도는 신사참배로 시작되고 오염된 의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가졌던 영적 의식의 시작으로 볼수 있고, 독립을 염원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내 소리를 죽이고 주님을 간구하는 거룩한 의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도가 일제의 영향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다른것으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주장이나, 또 오히려 그것이 기반이 되어서 예배는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한다는 논거도 그리 타당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오히려 침묵하여 비는 뜻의 묵도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딱 맞는 원래부터 우리것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