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에서 '전쟁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실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의 출처는 다윗이다.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에두고 별볼품없는 다윗이 내뱉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다윗이 전쟁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것은, 모든 전쟁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이 결정한다고 뜻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해석한 바와 같이 십자군 전쟁도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도 한국의 6.25전쟁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된다. 폭군 하나님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과격한 사람들은 이것도 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실로암 망대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눅13:4))
그것보다는 이 말은 이 전쟁에서 불의하고 자신의 힘과 패권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블레셋은 결코 승전할수 없다는 다윗의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이고 간구였을 뿐이다.
다윗은 모든 면에서 열세에 처한 이스라엘 가운데 믿음과 용기 하나로 싸움에 나선 사람이다. 골리앗과는 싸움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전쟁 영웅인 골리앗으로 인해 벌써 패전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때 다윗이 하는 말이 이 전쟁은 너희들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이었다. 새번역 성경에서 번역한것처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라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다. 전쟁의 원인이나 결과를 하나님께 전가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또하나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의 결과가 어느 한 사람을 위하는 하나님의 편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해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 성경에서 이런 많은 예를 찾아볼수 있지만 다윗의 경우만 생각해도 된다.
다윗은 용사도 아닌데 싸움에 나섰다. 그때 그가 자민족을 향해 가진 믿음만으로 갑자기 칼 싸움의 용사가 된 것이 아니다. 초능력을 발휘해서 싸움을 이기게 된 것도 아니다. 그가 평소에 부던히 노력해왔고 잘할 수 있었던 물매돌 던지기 실력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미신이 결과를 바꾼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와 헌신이 상황을 비현실적인것처럼 바꾸었을 뿐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을뿐 아니라 행동할줄 아는 용기도 있었던 사람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전쟁운운 한것이 아니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사람이고 거기에 더해 그런 그가 용기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라는 사람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기전에 기도 운운하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정을 현실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시드기야왕에게 충고했고 바른 결정을 내릴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메시지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하는 것과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이 전쟁은 오히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있다. 이들이 바른 판단을 내릴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전쟁이 있다며 막연히 우리가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고백을 하는 것보다훨씬 나은 일이 될것이다.
그 일은 우리가 자신의 사적인 이익보다 정직과 신뢰로 투표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신성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사회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욕심을 버리는 것들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또한 국가 지도자들이 자만과 정치적 이익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들은 하고나서 하나님이 우리편이라는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께서 공의로 판단하시길 겸손히 구하는 다윗과 같은 믿음과 용기있는 간구의 자세가 아닐까?
미가 선지자가 말한(4:3)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바꾸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편이길 구하는 운에 맡기는 미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결코 하나님이 결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이 마지막때에 욕심에 찬 리더와 이기적인 시민의식이 전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전쟁의 위기 앞에서 회개를 앞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로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용기있게 골리앗을 대면하고 나섰던 다윗과,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왕앞에 나아갔던 예레미야와 같은 자들이 많이 나타나길 소원하고, 우리가 그들중의 하나이길 소망한다.
이 말의 출처는 다윗이다.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에두고 별볼품없는 다윗이 내뱉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다윗이 전쟁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것은, 모든 전쟁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이 결정한다고 뜻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해석한 바와 같이 십자군 전쟁도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도 한국의 6.25전쟁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된다. 폭군 하나님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과격한 사람들은 이것도 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실로암 망대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눅13:4))
그것보다는 이 말은 이 전쟁에서 불의하고 자신의 힘과 패권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블레셋은 결코 승전할수 없다는 다윗의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이고 간구였을 뿐이다.
다윗은 모든 면에서 열세에 처한 이스라엘 가운데 믿음과 용기 하나로 싸움에 나선 사람이다. 골리앗과는 싸움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전쟁 영웅인 골리앗으로 인해 벌써 패전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때 다윗이 하는 말이 이 전쟁은 너희들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이었다. 새번역 성경에서 번역한것처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라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다. 전쟁의 원인이나 결과를 하나님께 전가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또하나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의 결과가 어느 한 사람을 위하는 하나님의 편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해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 성경에서 이런 많은 예를 찾아볼수 있지만 다윗의 경우만 생각해도 된다.
다윗은 용사도 아닌데 싸움에 나섰다. 그때 그가 자민족을 향해 가진 믿음만으로 갑자기 칼 싸움의 용사가 된 것이 아니다. 초능력을 발휘해서 싸움을 이기게 된 것도 아니다. 그가 평소에 부던히 노력해왔고 잘할 수 있었던 물매돌 던지기 실력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미신이 결과를 바꾼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와 헌신이 상황을 비현실적인것처럼 바꾸었을 뿐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을뿐 아니라 행동할줄 아는 용기도 있었던 사람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전쟁운운 한것이 아니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사람이고 거기에 더해 그런 그가 용기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라는 사람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기전에 기도 운운하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정을 현실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시드기야왕에게 충고했고 바른 결정을 내릴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메시지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하는 것과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이 전쟁은 오히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있다. 이들이 바른 판단을 내릴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전쟁이 있다며 막연히 우리가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고백을 하는 것보다훨씬 나은 일이 될것이다.
그 일은 우리가 자신의 사적인 이익보다 정직과 신뢰로 투표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신성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사회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욕심을 버리는 것들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또한 국가 지도자들이 자만과 정치적 이익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들은 하고나서 하나님이 우리편이라는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께서 공의로 판단하시길 겸손히 구하는 다윗과 같은 믿음과 용기있는 간구의 자세가 아닐까?
미가 선지자가 말한(4:3)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바꾸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편이길 구하는 운에 맡기는 미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결코 하나님이 결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이 마지막때에 욕심에 찬 리더와 이기적인 시민의식이 전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전쟁의 위기 앞에서 회개를 앞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로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용기있게 골리앗을 대면하고 나섰던 다윗과,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왕앞에 나아갔던 예레미야와 같은 자들이 많이 나타나길 소원하고, 우리가 그들중의 하나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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