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시연이. 이제 3살 실제 나이는 2살도 안되었다. 올 7월에 2살이 된다.
나는 33살. 40을 바라보는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이다. 30살의 차이가 나는 시연군과 나!
나는 시연이가 사탕을 먹지 않도록 조절한다.
사탕을 계속 먹게 되면 이후에는 잠도 잘수 없을 정도의 치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연이가 더러운 것을 만지면 못만지도록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걸 만진 손으로 입에 갖다댈 것을 알기에 그렇게 되면 시연군이 큰 병에 걸릴수도 있고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연군은 모른다.
내가 금지하는 것들을 원망하고 그래서 때리기도 하고 꼬집기도 한다.
내가 안볼때를 틈타 몰래 위와 같은 것을 행하려고도 한다.
이것이 모두 그의 인생을 이롭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른다.
겨우 30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 그는 모르고 나는 안다.
그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는 알지만 그는 모른다.
가끔씩 내 인생에서 내가 우겨서 하려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내 눈에 무척이나 선해 보이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그것의 성취를 위해서 무리를 하기도 하고 떼도 쓰고
가끔씩은 억지 기도를 하기도 하고 그 결과가 더디면 원망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의 나이는 얼마일까?
내가 33살. 하나님은 몇살?
하나님은 내가 올바른 것을 선택하며, 내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금지하고 막고 때로는 매를 가하기도 하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연이가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매를 가해도 인식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꼬집는 것 처럼
나도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못된 하나님으로 만들어간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연이가 말을 하게 되고
나와 말을 하게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고 나의 시연이를 향한 그 '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철이 들었다'하는 나이가 되면
그를 향한 내 마음까지 알게 되고 그는 배려많은 아이로, 헤아리는 아이로
소중한 것을 선택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나와 시연의 30년차가 주는 이해의 크기가 너무크다.
그런데 하나님과 나의 나이차이가 30년차이만 날까?
그 이해의 크기는 얼마나 클까?
만2살아이가 말을 하지 못해 내 뜻을 알지 못하는데
네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이라면
'기도'라는 대화의 통로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볼수 없고 이해할수도 없는 상태
기도가 끊어진 상태인 것이다.
시연이는 1년 더 있으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신앙의 1년은 너무 혼란스럽고 위험한 순간이다.
이미 은혜를 얻은 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영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더라도 대화의 단절이 가져올 그의 신앙의 상태의 변질은
너무도 위험하고 그로 하여금 얼마나 허무한 삶을 살게 하는지 이해할수 있다.
신앙 Faith/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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