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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Faith/신앙글 모음

성령님께 설교의 주도권을 드려야 합니다

by 길목 2007. 6. 22.

그말씀 7월호를 읽다가 홍정길 목사의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그냥 큰교회 목사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참 괜찮은 분이란걸 알게 되었다. 그의 열정과 헌신, 성령에 대한 민감함이 그를 참 멋진 목사로 보게 만든다. 아래는 그말씀 7월호 대담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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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성령님께 설교의 주도권을
드려야 합니다

홍정길 목사는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나오고 총회신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 건국대학교 교목 등을 역임하고 남서울교회를 개척했다. 지금은 남북나눔운동 회장,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남서울은혜교회 담임 목사로 있다.

장소: 밀알학교 이사장실
일시: 2007년 5월 11일(금) 오후 5시
진행: 정인교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설교학)
사진: 이남수 부장


처음에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활동하시다가 목회로 전환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학생복음화협의회 상임 대표였던 이승장 목사님의 퇴임식에서도 고백을 했지만, 사실 평생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청년들에게 복음 전하며 성경을 가르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격이 없어서 선교 단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에 ‘한국 IVF 50주년 전국대회’에 참석해 축사하는 자리에서 ‘당신들이 가는 길을 나도 갔기 때문에 그 길이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지 잘 압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여러분을 무지하게 부러워하는 목사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저는 자격이 없어서 중도 하차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했더니 모든 선교 단체의 간사님들이 울었어요. 그러나 지난 목회의 길이 후회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감격 속에 살면서 헌신의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1972년에 CCC에서 나와 1975년 상반기까지 건국대학교에서 채플을 인도했습니다. 당시에 임옥인 교수의 제의로 3년 동안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 전도자이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학교를 사임한 후 1975년 7월 4일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교회에 대해 정말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학생 선교 단체에만 있었다면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깨닫고 교회를 폄하하고 소홀히 했던 지난 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제가 직접 존 스토트 목사님에게 확인한 것으로서 ‘목자는 양을 알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회의 대강령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을 모르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마음에 죄송함이 있습니다.

남서울교회를 사임하시고 은혜교회를 개척하셨는데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특별한 게 없습니다. 지휘관이 가라고 하면 졸병은 따를 뿐입니다. 저는 밀알학교를 시작하면서 이를 밀알복지재단에 기증하고 단지 옆에서 돕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역 주민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면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할 개인적 대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별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의 퇴직금을 드리겠다고 기도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불해야 할 대가로 ‘너는 안 되겠느냐’는 주님의 질문 앞에서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남서울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희 교회의 경우에 당회가 참 화목합니다. 30여 명의 장로님들이 모여서 마치 한 형제처럼 의좋게 당회를 꾸려갑니다. 누가 반대를 크게 하면 옳은 일이라도 그 분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지난 10년 동안 당회를 하면서 큰소리가 난 적은 딱 한 번입니다. 신임 장로님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시며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에 생각의 차이로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좀 더 나이 드신 장로님이 전임자에게 ‘장로님은 심사숙고해 일을 처리하시니까 참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후임자에게 ‘장로님은 항상 패기 있게 일을 추진해가시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두 분이 다 옳은데 딱 한 가지 틀린 것이 있는데 우리 교회는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신임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 ‘형님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저희 교회는 참 화목합니다.

이런 교회의 분위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서울교회는 제가 사역하던 당시에 성도들의 70%가 새신자였습니다. 이 분들을 양육하면서 처음부터 강조한 것이 ‘성경이 말씀하면 순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남서울교회를 떠날 때, 성도들이 많이 아쉬워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자 순종하며 저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씀하면 순종한다는 목회적 훈련이 당회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교회적 결단을 놓고 볼 때, 이것은 엄청난 메시지와 축복이 되었습니다.
지난 1975년에 교회를 개척하고 1년 2개월 만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120명 성도의 교회가 어떻게 선교사를 파송하겠습니까? 그때 한국 교회는 선교사 파송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선교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 남서울교회가 한국의 많은 교회들 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선교를 열심히 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형편상 선교사 파송이 어렵겠다며 김정웅 선교사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기도하는데,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최고 명령인 선교 사명 앞에서 형편이 안 돼 선교를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목회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다시 태국으로 선교사 파송을 결의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첫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형편을 따지기 전에 그것이 ‘주님의 뜻인가’, ‘우리의 일인가’를 기도하면서 확인하고 순종합니다.

교회의 성숙과 성장의 동력은 결국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의 목회를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입니까?

목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좋은 예배당을 크게 지어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보다 주위에 좋은 목회자들을 많이 세우는 것입니다. 사실 목회에서 목회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러 목회자들과 함께 평생 목회를 감당하면서 선임 목회자로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뒷받침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저의 목회 일번지는 성도들이 아니라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과 열매를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각 분야에 탁월한 분들과 함께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는 정민영 선교사, 교육은 양승헌 목사, 상담은 노상헌 목사, 사회 문제는 강경민 목사, 남북 문제는 이문식 목사, 강해 설교는 박완철 목사, 성경 공부는 김경섭 목사 등 한국 교회의 요소에서 꼭 필요한 목회자들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데, 목사님의 탁월한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코 아닙니다. 제가 너무 약하니깐 하나님께서 좋은 분들을 붙여주신 것이죠.

남서울교회 개척 초기에 평신도가 평신도를 가르치는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어 평신도 교육에 주력하셨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평신도 교육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봅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신학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첫 감동과 통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미 신학의 일정한 틀을 갖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소속된 교파의 장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신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성경의 해석에서 한계도 있지만 평신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군더더기 없이 만나고 부딪히는 일만은 한국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학의 잣대를 통해 보는 성경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는 훈련은 평신도에게 평신도를 가르치게 하면서 주어진 놀라운 축복입니다. 물론 평신도는 신학적 배경이 없기 때문에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 목회자가 전체를 아우르는 설교를 통해 이끌어 줘야 합니다.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설교는 목회자에게 주신 성령님의 가장 큰 은사입니다. 목회자에게 이보다 더 큰 은사는 없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설교를 만들려는 노력보다 우리에게 설교를 주시는 성령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해 합니다. 설교를 위해 많은 준비와 연구도 필요하지만, 설교의 영이신 성령님께 설교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성도들이 얼마나 모이느냐 하는 것은 제자 훈련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설교의 넓이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제자 훈련해야 합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 됩니다.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시며 본인의 설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의 설교는 단점이 너무 많습니다. 전체 주제만 있고 전개 과정을 무시합니다. 그 부분을 항상 아쉽게 생각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본문을 외울 때까지 반복해 읽습니다. 설교를 통해 던져야 할 것은 본문 자체입니다. 설명과 예화는 본문만 잘 드러내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따라서 설교자의 마음에 본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설교 본문이 결정되면 아침에 일어나 매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통찰을 갖게 됩니다. 거기서 설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해 설교를 합니다. 강해 설교를 하면 일주일 전에 본문이 정해져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설교에서 저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마음속에 성경 본문 말씀을 많이 남길까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맡은 자가 자신이 맡은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목사님은 강해 설교를 하시는데, 강해 설교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습니다. 설교의 형식과 패턴을 어떻게 정하십니까?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처음 설교를 배웠습니다. 당시에 제목 설교를 주로 했습니다. 제목 설교는 잘못하면 설교자의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돼 설교가 설교자의 말이 되고 만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두려움을 느끼고 설교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분이 마틴 로이드 존스와 찰스 스펄전입니다. 당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 설교 강해」를 읽고 설교에 대한 큰 도전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설교는 성경 전체를 아우를 뿐 아니라 인간의 깊은 내면을 외과 수술을 하듯이 다루고 있습니다. 설교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찰스 스펄전의 설교는 주님과의 생생한 교제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설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음을 그대로 느끼게 하며 경험케 합니다.
두 분이 저의 설교에 귀중한 모델이지만 너무 탁월한 대가들이라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설교자들입니다. 그런 와중에 데니스 레인을 통해 강해 설교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런던바이블칼리지에서 3개월 동안 존 스토트 목사의 「현대 교회와 설교」(Between Two Worlds)에 관한 강의를 통해 설교의 구체적인 지침과 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제스처나 표정 같은 수사 기법을 별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수사 기법의 활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사적 표현들은 자신에게 익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면 사용해야 하지만 그것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말씀을 전해 보면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로 주시는 전개와 전달의 방법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오늘의 회중을 어떻게 파악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믿음은 고백입니다. 고백을 통해 믿음이 활동합니다. 믿음의 고백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은혜가 개인의 간증으로 나타나고, 개인의 전도로 나타나며, 세계 선교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구원 고백은 소중한 것입니다. 
둘째는 예배 고백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한 아버지를 찬양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적 고백입니다. 두 가지 고백이 한국 교회에 있지만, 이는 교회 안에 갇힌 상태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얻는 윤리 고백입니다. 순종은 윤리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최고의 윤리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부족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넷째는 섬김의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셨고, 큰 자는 섬기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섬김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큰 자는 호령하고 군림하는 자이지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섬김의 고백이 이뤄질 때, 사랑이 향기가 돼 교회 밖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다섯째는 문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각자의 은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 것이 문화 고백입니다.
개신교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있다면 첫 번째가 묵상입니다. 개신교는 성경을 갖게 되면서 묵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개신교는 논리 전개만 있고,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사상이 없습니다. 두 번째가 미술 문화입니다. 가톨릭의 성상 숭배 문제와 맞물려 개신교는 미술 문화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은사들이 믿음을 통해 다양한 문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제가 문화 고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가톨릭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불교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서 사람들이 문화권 안에 머물려고 그들의 문화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사람들을 묶어 줄 문화가 없기 때문에 한 번 교회를 떠나면 그만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주신 기독교 문화를 어떻게 고백적으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문화라고 할 때 CCM을 말하지만, 그것은 유행(fashion)이지 문화(culture)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이 몇몇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돈과 권력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교육과 문화입니다. 이런 점에서 문화의 힘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을 향한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나눠주십시오.

결국 말씀 묵상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깊이 연구하며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향력이란 삶의 결과이지 우리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향력은 만들어서 짜내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영향력이 감소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잘 못 살았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밝히고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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