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며/이런저런생각

설교로 은혜받지 못한 이들을 향하여

by Fragments 2003. 2. 4.
설교만큼 은혜로운 것도
또 지겨운것도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동안 우리는 꿈쩍도 하지 못한채
가장 은혜스런 모습을 하고 거룩한 열정으로
저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합니다.

설교가 은혜스럽다 치면
온갖 수식어가 다 붙고
내 입술에서 나오는 말조차
이전의 나의 모습을 망각한채
세련되고 겸손하고 온유함으로 변합니다.

설교가 지겹다 치면
내 속의 이성이 활발해져
비평과 확신으로 가득찬 언사와
하나님을 홀로 소유할수 있는 자만이 할수 있는
많은 행동들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서는
설교를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맹렬하고도 정확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설교를 위해서 월요일부터 정결함으로 기도하며 묵상하며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른 설교 감동적인 설교는 많은 정성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돈과 정성을 들이니까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화가 나오는것 아니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는 자도 그처럼 열심히 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수십억이 들어간 영화가 개봉 하루만에 문닫는 경우도 있음을 간과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너무나 정확하고 마음아픈 이야기를 다루어서 사랑받지 못하고 간판내리는 영화가 있음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 시대의 문화 풍조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신경의 미묘한 재미를 건드리는 것에서 각각 다르게 평가되곤합니다. 예술이냐 쓰레기냐도 영화를 보는 이의 입장에서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타납니다.

여하튼 설교는 영화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키는 주일
전해들려오는 설교말씀속에서
만족함을 찾길 원한다면
이제는 강대상에 있는 설교자의 입술을 주시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입재간에서 유쾌함을 찾아서도 안되고
그의 언변에서 논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찾아서도 안됩니다.
오로지 우리가 찾아야 할것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참 설교가 전달되고 이해되는 주체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유치한 말이 상투적인 말이 되는가 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헌신을 이끌어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주일 듣는 말씀속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까?
나입니까?
설교자입니까?
우리의 관심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찬양하며 말씀들으며 그 삶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귀는 교만으로 막혔고
우리의 눈은 더러움으로 가리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후부터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참 평안속에서 살수 있는 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은혜로 살아갈수 있는 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만약 그분의 음성을 듣고도
그것은 내게 맞는 말씀이 아니었다고 말할자가 있습니까?
그런자는 하나님위에 하늘에까지 높아지려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설교로 은혜받지 못한 이들이여!
진리로 관심을 돌릴지어다!
설교로 은혜받지 못한 사람들의 논리가 성립한다면
설교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일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일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교회의 수장으로 두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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