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며/일상과 사유

여행을 한번 해야겠다.

by Fragments 2026. 3. 12.

아내와 결혼했을때 나는 돈을 가진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도 어리석었고 무책임했고 한심한 청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해준 아내는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돈에 대해서 소망하거나 그것때문에 불평한 적이없다. 

 

500만원에 30만원짜리 반지하방을 얻어 신혼을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받지 않고 사역을 했던 선교단체에서의 삶 때문에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가난과 친구하며 살아왔다.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했던 삶이 내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제는 반지하 방에서 나는 특유의 퀘퀘한 냄새를 맡게 되면 익숙함을 넘어 친밀감과 추억속으로 빠지게 된다. 

 

목사로 헌신하고 난 이후 돈을 소망하지 않고 살다보니 가난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신혼여행때 제주도를 가본 것 외에 여행이란걸 가본적이 없다. 그런걸 계획한다는 것이 내 머리에는 없었다. 휴가라는 것의 개념도 내 안에는 없었다. 휴가가 있고 휴가때에는 여행을 다녀오는 주변의 삶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색하고 부러운 것이었다. 얼마나 부자가 되면 휴가도 가고 여행도 갈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내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평생 고생만 시켰다. 여행한번 가보지 못했다. 그저 선교사적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런 삶에는 이런 호화스러운 것을 꿈꾸는 것은 죄라고 인식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왔던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들도 여행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놀러간 기억은 아마도 대부분 처남을 통해서일 것이다.

 

어렸을때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낸 내 삶에는 초등학교의 삶도 없고 가족의 삶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도 전수하지 못했다. 알지 못하면 배우기라도 해야 하는데.... 전혀 그걸 시도하지 못했다. 어리석은 아빠의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다연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다연이가 살았을때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돈이 없어 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나는 아마도 평생 계속 못해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생각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빚을 져서라도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아내와도 여행이란걸 해보고 싶어졌다.

 

아직도 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매월 빚을 친구로 삼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사역으로서의 일할 기회를 얻게 되고 은혜의 창구를 만나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것 같다. 내가 능력이 없지도 않은데... 무언가를 할때마다 돈보다는 가치를 생각하고 판단할수 밖에 없는 내 모습을 확인했고 아내도 그런 내 모습을 인정했고 아내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돈에 익숙치 않아서 지금도 그런쪽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런게 안되었으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난으로 인해 아내는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이 모습으로 내가 서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세밀하고 친밀하게 경험할수 있기도 하다. 

가진게 없어서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수 없기 때문이다.

보증금 1000만원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가족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수 있는건 오직 주님때문이다.

 

이런 50년의 훈련의 삶 때문인지 이제는 어떤 환경이 되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반지하에 살면서 물이 차는 것을 몇번을 경험했는지 1층에 사는 것이 너무나 큰 감사이다. 

점심을 먹을 돈이 없어서 굶어본 경험은 먹는 것에 별 소망을 두지 않게 했다. 그래서 먹는 것이 무엇이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가족의 빚을 갚느라 시간을 오래 써야 했고, 집밖에 깍두기들이 지키고 있었던 영화같은 상황도 경험했다. 경매 딱지를 붙이러 온 사람들이 와서 붙일게 없어서 미안한 내색을 하고 돌아갔던 추억도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고 그런것들이 나를 무너뜨릴수는 없다. 

 

그런데... 자식에게 못해준건, 아내에게 못해준건 너무나 한이 서린다.

먼저 간 다연이를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함이 한이 서린다.

못나고 무능한 아빠의 모습만이 남은것처럼 보인다.

아들이 커서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것에서는 큰 자괴감을 느꼈다.

얼마나 한이 서렸으면 그럴까라는 생각때문에.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집안의 가장인 나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함 때문에, 미안함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의 해답을 예수님을 만나면서 찾았고 그래서 신학을 했고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그것을 깨닫지도 못할때인데, 가난한 목사의 자녀로서의 삶을 태어나면서 강요당한 것이었다.

성숙하며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도 전에 내가 나는 괜찮다고 설정한 내 삶 때문에 아이들이 선한 삶보다 가난을 극복하는 삶을 먼저 학습하고 목표로 삼은것에 대한 나의 무능과 한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를 찾지도 못하고 시간이 흐를까 염려가 된다.

 

그냥 그저 단지

아내와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늦지 않게.

 

그 정도는 미안함을 갖지 않고 살아야겠다.

그동안은 그런 삶을 사치라고 나에게는 맞지 않는 삶이라고

또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괜찮은 삶이다!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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