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형의 실질적 증거: 예호하난 벤 하그콜
- 발견의 의의: 고대 로마 제국에서 수만 명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문헌 기록은 많으나,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실질적 유해는 1968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이 유골이 유일함.
- 핵심 유물: 철못이 관통된 상태로 발견된 '오른쪽 발꿈치 뼈(종골)'와 "하가콜의 아들 예호하난"이라는 비문이 새겨진 납골당(유골함).
- 역사적 배경: 서기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 이전, 제2성전 시대(BC 37년 ~ AD 70년)에 거주했던 유대인 가문의 무덤군에서 발굴됨.
1. 발굴 경위와 무덤의 특징
- 발굴지: 예루살렘 북동쪽 기바트 하미브타르(Givat ha-Mivtar).
- 발굴 배경: 1967년 6일 전쟁 이후 대규모 건설 공사 중 인부들에 의해 우연히 매장실이 발견되었으며, 바실리오스 차페리스(Vassilios Tzaferis) 박사가 조사를 주도함.
- 무덤 구조: 전형적인 유대인 가족 묘지로, 부드러운 석회암을 깎아 만든 두 개의 방과 매장용 벽감(로쿨리)으로 구성됨. 이곳에서 총 17명의 유골이 담긴 8개의 납골당이 발견됨.

2. 희생자 '예호하난'의 프로필
- 신원: 납골당에 아람어로 "하가콜의 아들 예호하난(Yehohanan ben Hagkol)"이라는 이름이 명확히 새겨져 있음.
- 신체 특징: 20대 중후반(24~28세)의 남성으로, 키는 당시 평균인 약 167cm임. 팔다리가 날씬하고 근육이 가늘어 고된 육체노동을 하지 않은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추정됨.
- 선천적 기형: 얼굴에 우측 구개열(언청이)과 안면 비대칭이 있었으나, 수염이나 머리카락에 가려져 겉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을 것으로 보임.

3. 십자가형의 결정적 증거: 못 박힌 뼈
- 철못의 상태: 예호하난의 오른쪽 발꿈치 뼈에는 약 11.5cm~12cm 길이의 철못이 박혀 있었음.
- 발견 이유: 처형 당시 못이 십자가의 단단한 올리브 나무 옹이(knot)에 박히면서 끝이 낚시바늘처럼 휘어져 버림. 이로 인해 사후에 못을 뽑을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이 발꿈치 뼈와 십자가 나무 조각 일부를 함께 잘라내어 매장했기 때문에 증거가 보존될 수 있었음.
- 나무 성분: 못 머리 쪽에서는 아카시아 또는 피스타치오 나무판 조각이, 못 끝쪽에서는 올리브 나무 조각이 발견됨. 이는 발이 나무판에 고정된 채 올리브 나무 기둥에 박혔음을 의미함.
4. 처형 방식의 재구성 (하스 vs 지아스 분석)
- 하스(Haas)의 초기 견해: 한 개의 못이 양쪽 발꿈치를 동시에 관통하여 두 다리가 겹쳐진 채 못 박혔다고 분석함. 팔 또한 못 박혔을 것으로 보았음.
- 지아스(Zias)의 수정 견해: 못의 길이가 두 발을 뚫기엔 짧다는 점을 들어, 다리를 십자가 기둥 양옆으로 벌려 각각 못 박았을 것으로 수정함. 또한 팔은 못보다는 밧줄로 묶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함(당시 나무 부족으로 가로대를 재사용해야 했기 때문).
- 사망 원인: 십자가에 매달린 자세로 인해 가슴 근육이 압박받아 발생하는 질식사가 주원인임.
5. 역사적 맥락과 가문의 비극
- 가족 관계: 납골당 비문을 통해 그의 가족 중 '시몬'은 성전 건축가였고, '여호나단'은 도공이었음을 알 수 있음. 이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임.
- 정치적 처형: 예호하난이 평범한 도둑이 아니라 로마에 저항한 정치범 또는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을 가능성이 큼.
- 사후 처치: 유대인의 관습(안식일 전 매장)에 따라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다리를 강하게 때려 부러뜨린 흔적(Crurifragium)이 정강이뼈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복음서의 기록과 일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