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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Life/생각 & 일기

잔혹함이 일상화된 시대에서 교회의 역할을 기대하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뜨고 있다는 ‘아저씨’ 영화를 보았다. 이른 아침 조조였는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이틀에 걸쳐 안젤리나 졸 리가 나오는 ‘솔트’와 ‘아저씨’를 보았는데, 예상외로 아저씨의 관객이 더 많아서 조금은 놀랐다.

꽃미남 아저씨의 멋진 모습과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와 비주얼 때문에 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너무나 잔인한 모습인데, 권선징악의 기본 구도속에서 그런 끔찍함은 희석되어 버렸고, 원빈이라는 꽃미남 배우의  선하고 멋진 이미지 때문에 영화는 꽤 친근감있게 다가와 버렸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가 너무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심의에서 통과하지 못하자, 신문들은 일제히 그 내용을 연이어 전하고 있다. 이병헌과 최민식이라는 거물급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홍보와도 같은 그런식의 보도로 그 영화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드러내는 양상은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

다시 ‘아저씨’ 얘기로 돌아가서, 그 영화에 등장하는 끔찍한 장면들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사람의 두 눈을 뽑아서 병에 담아서 보여주는 장면. 예리한 칼을 입속에 넣어 찢는 것을 예시하는 장면. 칼을 수도 없이 찔러 넣어 죽이는 장면 등.
영화는 너무도 리얼하게 그런 장면을 노출시켜 주는데, 관객의 하나인 나로서는 그리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요즘엔 이런 영화들이 많아진다. 너무도 많아서 이제는 고개를 돌려서 봐야 하는 수준꺼리도 안된다. 그래서인지 뉴스에 가끔씩 등장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모방범행으로 인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너무도 아쉽고 두렵다.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잔인함이 일상화 되는 것이 심히 염려가 된다.
더욱이 ‘제한’이라는 가림막이 전혀 역할을 할 수 없는 시대에서 허울뿐인 보호책을 등에 엎고 나오는 이런 파급력이 큰 미디어들이 온 사회를 병들게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사회가 원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그렇게 만들어 내니 사회가 원하게 된 것일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서로 순화(?) 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큰 자극을 제공해주어야 하는 악순환의 시대로 들어서기 전에 멈추어서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역할을 기독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내어놓는 곳이 기독교 공동체 만한 곳이 없다고 보는데, 그런 모습을 별로 볼 수가 없다. 혹 누군가 그런 결과물이 나왔다 치면, 사람들이 외면해버린다.

선악의 구도로 나눈다 치면, 악이 계속 공급되는 상황에서 쓰레기 청소만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 할 수가 없다. 공급은 줄지 않고 있는데 치우기만 한다면 상황이 변하지 않거나 엄청난 공급으로 인해 패할수도 있다. 방법은 선을 악과 동일한 양만큼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선의 공급량을 악보다는 최소한 많게 늘려서 사회가 악보다는 선을 보고 자라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역할을 교회가 해주면 좋겠다. 문화 사역자라고 하는 전문 사역자들이,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을 얻어 이 일을 감당해주면 좋겠다. ‘사탄이 문화를 선택했다’는 메시지는 2000년대 이전부터 나온 소리이다. 그런데 10년 이상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교단과 교회가 이 일에 힘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극장가에 멋지고도 아름다운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