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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ociety/좋은글

희망의 심마니가 되라!

by 길목 2002. 10. 26.
"희망의 심마니가 되라!"

나는 살아오면서 죽음 직전까지 갔던 큰 위기가 3번 있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만 계셨고 아버지는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 사셨다.
그나마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버렸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슬픔과 절망에 가득찬 채 오직 죽음만을 생각하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학소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괴로움을 글로 쓰면서 풀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어쩌다가 나를 찾아 집에 오면 나는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움에 바르르 떨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소녀였던 셈이다.

절망과 슬픔이 나의 주성분이었던 사춘기를 지나고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현실적으로 판단하면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남편이었다.
야간대학을 졸업한 가난한 공무원.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그러나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감행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쪼개어 알콩달콩 참으로 열심히도 살았다.
10평 남짓한 아파트를 장만하고 나는 세상이 부러울게 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친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사업은 부도가 나버렸다. 나는 두 아이를 가진 38세의 주부로서 거지가 된 현실을 쳐다보았다. 절망뿐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좁은 아파트의 문간방에 세들어 살면서 오직 죽음, 가족동반자살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자신에게 4지선다형 시험지를 내주었다.
너무 힘들테니 차마 주관식 문제를 내줄 수는 없었다.
자, 하나만 찍어라!
1. 이혼
2. 가족동반자살
3. 묻지마 인생
4. 새출발

이혼을 하려고 생각했더니 가정법원에 왔다갔다 복잡했다. 아이쿠, 싫어!
다음 가족동반자살… 사실은 제일 편하고 간단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눈에서 별이 반짝반짝 쏟아지는 저 철부지 아이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안돼!
다음 묻지마 인생… 타락을 해버려라! 그러나 타락이라는 것도 술이 취해서 알딸딸할 때 하는 거지 나는 술을 한잔도 못하는 사람이니 타락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남은 건 새 출발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처럼 신비한 것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통 시커멓던 세상, 오직 절망뿐이던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그래, 내가 죽었다 생각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왜 나라고 잘 살지 말란 법 있어? 끝까지 노력해봐야지!

그래서 나는 신문광고란을 뒤적이며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생전 처음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고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취직이 된 순간부터 또 나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모든 동료들이 나를 퇴출시키기위해 이미 전략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사람이 필요한 광고회사, 그것도 가장 중요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다 늙은 여자, 폐차장으로나 가야할 여자, 광고의 광자도 모르는 여자가 들어왔으니 그들도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 광고를 공부했고 그들의 구박을 견뎌내며 이를 앙다물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나는 죽음 직전까지 나를 데려갔던 ‘큰 위기 3번’을 이겨내고 지금은 일요일도 쉬지 못할 만큼 전국각지에서 몰려오는 일에 묻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탈무드에 보면 3마리 개구리 이야기가 나온다.
개구리 3마리가 우유통에 빠졌다.
1번 개구리… 으악 나는 죽었군! 그리고 그냥 죽어버린다.
2번 개구리… 이를 어째? 깔짝깔짝 조금 허우적대다가 그냥 포기, 역시 죽어버린다.
3번 개구리…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 니 까짓게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난 기필코 살아 나갈거야! 개구리는 끊임없이 두 팔 두다리를 움직이며 나갈 곳을 찾아 헤맨다. 우유는 버터로 변하고 개구리는 그 버터를 층계삼아 밖으로 나온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살아가면서 만나는 무수한 절망들, 힘든 순간들…
3번 개구리처럼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는 의지로 강하게 도전하면 반드시 어딘가 출구가 보인다.

전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비관주의자는 희망 속에서 절망을 보지만 낙천주의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캐낸다!
그렇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캐낼 줄 아는 ‘희망의 심마니’가 되어야 한다.
희망만이 최고의 항암제, 최고의 방부제다!


-최윤희(카피라이터,‘고정관념 와장창깨기’의 저자가 십대들의 쪽지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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