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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Society/좋은글

다 너희들 보려고 온거야

by 길목 2002. 10. 18.
내게 있어 사랑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참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이다. 지금껏 진실된 사랑이 존재한다고 보지 못했던 나이기에 나에게 예수님의 사랑은 약간은 피상적이고 체험되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여러차례의 사역도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 하기는 했지만 사역후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절망감이 늘상 있어왔던게 사실이었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물주기 사역에 아영면 선발대로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가기 싫은 마음이 앞섰다. 그 말을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들려오는 소리는 지난번 뿌리기 사역때  맡았던 서정면에 내가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서정면에 가서 안내하고 아이들과, 또 어르신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서 갈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가겠노라고 아무 계획없이 대답해 버렸다.

선발대로 아영면에 도착하여 모든 사람이 각 마을로 흩어져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떠나고 나는 우선 윗안골과 아랫안골에 배치되었다. 그곳을 맡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나지도 못했던 아이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가자고 설득하는데 도무지 들어주시질 않았다. 아이들도 안가겠다는 통에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을이 끝나고 드디어 내가 맡았던 서정 마을에 도착하게 되어 시간이 없는터라 얼른 뛰어 다니며 어설픈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어르신들이 모두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역시 그렇구나... 여름 뿌리기 사역때에 8명의 내가 속한 진이 맡았던 지역은 마을분들중 16분이나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었다. 그때에는 그것이 복음이라는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간 우리들에겐 너무도 실망스럽게 다가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쁨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날을 기도로 접고 아침을 맞았다. 아침부터 열심히 뛰어 다녔다. 서정에 도착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어제 약속을 받아두었던 집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늘 아이들과 함께 떠납니다.”
“조금 있으면 갈터이니 준비시켜 주시고 기다리시면 차가 올겁니다.”
그런데 나의 기쁨에 찬 잔잔한 말에 요동을 치게 만드는 무서운 한마디가 내 던져졌다.
“우리 애는 못갈 것 같네요.”
“아니 무엇 때문에 못가시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들도 하나도 안간다네요. 그리고 낼모레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못갑니다.” 하고 문을 닫으셨다. 그렇게 허망할때가....

그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아이를 못데려간다는 안타까움보다 그 어르신에 대한 불신이었다. ‘맞다. 그러면 그렇지, 기독교인도 별수 없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맞았다. 그것이 나의 마음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진정한 사랑없음에 대한 뼈저린 확증이 느껴지는 그 마음이었다. 나는 이번 사역도 실패로 끝나는구나... 하는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마지막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기도하길 원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 안됩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리라 감사하게 생각될 뿐이다.
마지막 집이었다. 형숙이라는 친구인데 중2학년인 친구였다. 집에 들어가자 어머님과 아버님이 나와서 맞아주셨다. 그리고는 또 나의 마음을 울리는 한마디를 하셨다.

“어제 연락을 드릴려고 했는데, 형숙이가 안가겠다네요.. 그래서 지금 학원 가버렸어요.”

그 말은 곧 실패였다. 완전한 실패... 처절한 패배였다.

“하나님!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난 그때 강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것을 기억한다. 무작정 방에 좀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고 방안에 앉아버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다. 꼭 가게만 해달라고, 3박 4일을 형숙이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그러기를 10분이 지난 것 같았다. 갑자기 아버님이 전화기를 드셨다. 그리고 형숙이가 다니는 면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하셨다.

“형숙이 너.. 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금 빨리 와라. 아니 여기 올시간 없으니까 면에 너 친구있지? 친구집에서 곧바로 다녀와”

난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을 싣고 갈 차가 서있는 면에서 곧바로 3박4일을 다녀오라는 아버님의 말씀.. 난 잊을 수 가 없었다. 아버님은 또 여러군데 연락을 하셨다. 형숙이 친구 부모님께 연락을 하셔서, 형숙이도 가니까 친구들도 보내라는 말씀이셨다.

그 때 그 순간으로 인해서 7명의 아이들과 나는 서울로 향할수 있게 되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여기에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기쁨을 느꼈던 것은 차가 떠나오려는 순간이었다. 형숙이가 친구도 온다고 했는데 차가 떠나버려서 못오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은숙이라고 했다.

은숙이 집에 갔을 때 나는 은숙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아버님한테 욕만 듣고 쫓겨났었다. 마을에서 유독히도 기독교를 싫어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 집에 있는 은숙이가 간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얼른 차를 보내 데려왔다. 은숙이는 나를 보더니 아빠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오히려 은숙이로 인해서 아빠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과 3박4일의 일정이 너무도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이었다. 이제 사역도 접어 들어가고 내짝궁 용학이도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금요일 아이들과 함께 정동문화회관에서 갖게되는 ‘한마당’ 행사때. 고등학교 아이들은 우리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게 내내 불평이었는데, 공연을위해 빡빡하게 움직이는 일정속에서 아이들이 무척이나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가보니 짜증을 내었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워십댄스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약간이나마 완성된 모습으로 무대에 서려고 하니 아이들의 짜증은 말로 할수 없었다. 그중에 형준희라는 우리 서정 마을에서 온 녀석이 나 한테 그랬다.

“기억에 남게 해 주겠다는게 이거에요?”

내가 그 녀석을 데려오기 전에 그 아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컹 내려 앉았다. 거의 끝나가는데 그 아이의 마음이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심히 걱정이 되던 때에 그 날 그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현이라는 제일 큰 녀석이 내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 보려던 여기 온거여요? 아니면 다른 거 보려 온건가요?”
“이 사람들 다 너희들 모습 보려고 온거야!”

순간 그 녀석 눈에는 흠칫 놀라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머리가 다 큰 녀석이 생각하기로는 그곳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바로 어제부터 단 몇시간밖에, 그것도 장난으로 짜증내며 연습한거 밖에 없는데, 으리으리한 공연장같은 곳에 여러사람들이 찾아온 것이 자신들을 보러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만찬을 준비할때까지 나는 준희가 걱정이 되었다. 녀석이 공연때에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다. 만찬이 시작되고 짝궁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고 서로를 꼭 껴안고 찬양을 드리는 시간었다. 목사님께서는 모든 친구에게 인사를 하자고 하였다.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모두 만나는데 준희를 만날 차례였다. 그 앞에 서니 준희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두 손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눈물이었을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예수님을 만나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거야.....’ 속으로 준희를 위해 기도하면서 만찬을 마칠수가 있었다. 물론 내 짝궁과도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용학이는 “꼭 좋은 목사님이 되세요”라고 눈물지으며 말했고, 나는 용학에게 “꼭 훌륭한 공군 조종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사역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이 너무도 그립다. 내 짝궁 용학이 뿐만 아이라 데려올 때 차안에서 보았던 모든 아이들이 그립다. 차안에서 유난히도 같이 앉자고 졸랐던 병태와 병근 형제... 병태에게는 명태라고 불렀다 혼날뻔 했었는데, 알고보니 그 녀석들의 가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한다. 가슴이 미어진다. 사랑에 굶주려 있는 아이들... 그 마음에 감히 우리의 좁은 사랑을 어떻게 채울수 있단 말인가? 예수... 그 이름에 희망을 걸어본다. 예수! 그 이름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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