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회개 이후를 말해야 한다.


 

회개의 메시지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메시지였다. 그런데 그것 밖에는 없었다. 무리한 말일까? 예수님을 믿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귀한 동기가 되었지만, 교회 와서 십수년 신앙생활을 하는데 회개 그리고 회개, 또 회개... 그리고 또 회개만을 외쳤다. 매번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먹여야 했고, 고난을 묵상하며 슬퍼해야 했다.

 

망각의 동물인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년 기념하는 것이 그것 뿐이라면 좀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아이가 젖을 떼고 자라서 아장아장 걷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혼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생활을 하는 단계까지 성장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아직도 걸음마 떼는 것만 가르치고 있다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교회는 십자가와 회개만 가르쳤다. 그래서 기도도 늘 소리지르며 눈물을 보여야만 기도로 보이는 현상도 있다.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는 불가능한것처럼, 마치 하나님께는 야단맞고 울벼불며 찾아오는 모습만 가능한것처럼, 한국교회는 그래왔던 것 같다.

신문광고를 채우는 ‘전도전략, 부흥전략...’ 이런 광고들은 ‘몇 명 등록’을 했다고 표현하지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등록은 교회가 모이고 있는 그 건물에 앞으로 나와보겠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짧은시간 그렇게 많은 인원을 ‘등록’시켰다면 그 이후는 더 중요한데 그 부분을 교회는 다시 ‘회개’, 그리고 ‘구원’의 메시지로 채우려고만 한다.

 

부흥기 초기 복음을 위해 소개되었던 ‘복’, ‘성공’ 이와 같은 말을 신앙생활 하는 내내 평생 그것 밖에 배울게 없게 만든다면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와는 다른 것 같다. 우리 한국교회는 어쩌면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120년을 보내왔을 수 있다. 기도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경건함이 다 표현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지각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해야 한다’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기도로 모든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해버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히 5:13-14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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