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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Faith/묵상

찬양의 중심

by 길목 2008.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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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대상은 항상 하나님이어야 한다.
사랑과 감사 은혜와 기도 등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될수도 있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헌신과 노래가 될수도 있겠지만,  대상과 중심이 변해서는 안된다.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그 맡은 1시간 혹은 2시간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참석한 성도들의 참여와 자신이 생각한 어느 정도의 열정을 목적을 삼아버린다면 그 찬양은 사실 무의미해져버린다.

여느 교회에서는 찬양시간이 짜투리 시간으로, 예배 들어가기 위한 여흥의 시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 시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이 있는 가사를 함께 부를때 만큼은
개인적인 신앙나눔보다, 성도들의 화합보다, 신앙 확립을 위한 결심보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내용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와 복음성가등은 지금 논의하고 있는
하나님 대상의 하나님 중심의 찬양을 어렵게 만든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가사를 담고 있는 음악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찬송가가 복음송가보다 더하다는 사실은 더 안타까운 사실이다.

영미 부흥기의 부흥찬송가를 바로 번역해서 들여온 우리 통합찬송가는
찬양인도시간에 뜨거운 박수와 '주여'를 열창해야만 제대로 된 찬양시간으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잔잔한 찬송가로 마무리 지으면, 다음 설교하는 시간이 밋밋하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늘었다.
하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열광만 있을까? 박수치고 뜨겁게 회개하는 자리만 있을까? 곡성으로 울며 부르짖는 시간만 있을까?

우리의 감정이 슬픔의 시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쁨의 감정도 우리가 참 아름답게 표출할수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다윗이 언약궤를 들여왔을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나팔소리와 흥에 겨워 노래한 것을 생각한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홍해 바다를 건너고 난후
미리암과 뭇 여인들이 소고치며 찬양한 것을 생각한다면....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꼭 울며 회개의 울부짖음이 있어야만 그 시간이 성령께서 강권하시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열광적인 분위기가 나타나면 성령이 함께 하시는 시간으로 오인하는 경우를 만들게 되는 경우가 있지는 않는가...

잔잔하지만 심령으로 찬양하며, 기쁘지만 정겹게 찬양하며, 진실되지만 아름답고 소박하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다. 박수를 안쳐도 그럴수 있다.

문제는 항상 그 중심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을 찬미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인식하고 그 찬양시간을 잘 이끌수 있는 찬양인도자가 필요하다.
또 그에 합한 아름다운 찬양시들이 많이 쓰여야 이 찬양사역이 효율적으로 잘 될수 있을 것이다.

홀로 찬양하는 시간은 그 자신이 이미 결심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니 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가 분위기 맞추려고 시간을 잡아 하나님앞에 찬양의 시간으로 바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울부짖어야만 좋아하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함께 회중이 공동체가 함께 찬양하는 시간만 유독 그렇게 인정된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찬양인도자과 목회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훈련된 찬양인도자들을 세워야 할터이고
무엇보다 예배하는 찬양인도자들이, 싱어들이 악기연주자들이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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