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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자료 Data/실천신학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에 대한 진단과 전망

by 길목 2007. 5. 1.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에 대한 진단과 전망

유재성 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에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했다(M.Div., M.A., Ph.D.). 지금은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정’은 삶의 기초이며 원천이다. 나아가 마을과 도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 공동체이기도 하다. 본래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었다(창 1:30~31). 그런데 이런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 1960년대 이후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급격한 사회 구조적 변화와 핵가족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후기 산업 사회에 들어선 지금은 극단의 상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전통적 가정 개념이 도전받고 있으며 가치관의 공동화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가족이 흔들리거나 붕괴되는 증상들이 사회 도처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정의 문제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1970년대에 가톨릭의 ‘Marriage Encounter’와 개신교의 ‘Marriage Enrichment’와 같은 가정 사역 프로그램들이 소개된 후 한국의 가정 사역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 양과 질에서 많은 성장을 거듭했다. ‘Marriage Encounter’ 프로그램은 칼보(Gabriel Calvo) 신부에 의해 1950년대에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칼보 신부는 청소년 문제를 다루던 중에 그것이 건강하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부모의 부부 관계를 개선해 가정이 건강해지면 청소년 문제도 개선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나라에는 1973년에 한국가톨릭중앙협의회에 의해 소개되었다. ‘Marriage Enrichment’는 1961년 미국 퀘이커 교회의 메이스(David Mace)가 주도해 일으킨 가정 회복 운동으로서 미국 개신 교회들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이와 유사한 다양한 가정 사역 프로그램들이 개발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가정들이 여전히 흔들리며 해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기독교 가정마저 현실적 삶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다가 신앙마저 좌초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을 향한 교회 사역의 현실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은 역동적이지만 그 진행 과정이나 전망에 대한 성찰은 다소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개별적, 비조직적 접근

이 접근은 한국에 가정 사역이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회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교회의 전체적 사역 철학이나 방향에 가정 사역의 개념이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목회 사역과 가정 사역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없다. 서로 분리돼 있고 개별된 것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교회의 전통적 사역 접근으로도 가정의 문제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예배, 교육, 심방 등을 통해 성도 개개인들을 돌보고 건강한 가정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교회 내에 가정 사역을 위한 어떤 시도나 조직도 없다.
이런 접근은 ‘교회’와 ‘가정’에 대한 목회자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 교회 혹은 목회가 가정보다 우선되고 중요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에 충성하면 가정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합니까?’라고 반문하면서 교회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 성경 공부를 더욱 철저히 하고, 설교를 들은 대로 실천하며, 기도를 열심히 하면 가정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접근을 하는 교회들에선 교회와 가정이 개별적으로 분리돼 있고, 심지어 성도들의 시간과 에너지에 있어서 경쟁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목회자가 가정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외면할 때 이런 접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목회자가 성장할 때 가정에서 어려움을 별로 겪어보지 못해 가정 문제에 대한 피상적 입장을 취하거나, 반대로 가정 문제로 인해 고통이 많았을 때 그 방어 기제로 가정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목회자 자신이 문제에 빠져 있기에 가정 사역을 하면 자신의 병든 가정을 거론하거나 노출해야 하기 때문에, 혹은 이런 문제에 개입하기가 두려워서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해마다 신학대학원의 목회상담학 클래스에서 신학 전공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나 이슈 혹은 고민들을 기록하고 성찰하게 한다. 놀라운 것은 대다수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하거나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외로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건강한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하고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사역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필자가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신학대학원 커리큘럼에서 필수로 상담 관련 과목을 개설한 것은 목회상담학 개론에 해당하는 한 과목 정도였다. 가정 사역을 필수로 요구하는 학교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들이 가정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교회에서 실시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교회가 현실적으로 체계적 가정 사역의 필요성을 외면하기란 어렵다. 무엇보다 가정의 역기능이나 그로 인한 각종 사회적 지표나 통계를 볼 때 가정 사역에 무관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단순히 부부의 갈등이나 가정의 붕괴로 끝나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각종 청소년 비행, 미혼모, 낙태 등과 같은 문제들의 직?간접적 요인이 된다. 증가하는 결손 가정과 그 자녀들의 문제는 사회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가정은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들 간에 심리적 박탈감이 형성되고 경제는 양극화되며, 다양한 노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런 사실에 대해 이혼 전문 변호사 이명숙 씨는 “요즘 유부남, 유부녀, 처녀, 총각 가릴 것 없이 외도에 대한 도덕적 죄의식이 없다”고 지적하고 “남녀 모두 옛날에는 꾹 참았을 만한 일도 지금은 견디지 않고 견딜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느 쪽도 자녀를 맡지 않으려고 함에 따라 졸지에 ‘이혼 고아’가 되는 미성년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상도 현 세대를 잘 묘사하는 것이다. 유재성, “한국 사회의 이혼 급증 현상 요인 분석”,「목회와신학」 통권 167호(2003년 5월), p. 101, pp. 105~108;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이혼이 늘고 있다”,「가정과 상담」 통권 44호(2001년, 9월), p. 128.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비기독교인의 가정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정의 문제는 사회적인 동시에 교회적이고 영적인 문제이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가정을 흔들고, 부부의 질서와 역할을 혼란스럽게 하며, 미움과 분노 그리고 살인까지 일으키며 오늘날까지 쉬지 않고 가정을 공격하면서 흔들고 있다. 교회와 가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가정이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면 교회도 존립의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가정들과 그 구성원들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구체적인 사역을 통해 흔들리는 21세기 가정들을 회복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병행적, 반(半)조직적 접근

병행적 접근은 가정 사역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여타의 교회 사역과 함께 부부의 갈등해결이나 부모?자녀의 관계 회복 등과 같은 행사들을 병행적으로 실시하는 교회들에서 발견된다.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가정이 온전하고 건강해지도록 각종 사역을 제시한다. 가정 문제가 목회의 주요 이슈이고 관심사이다. 이런 교회들은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키며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들을 실시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 주일에는 아동 관련 헌아식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행사들을 기획하고, 어버이 주일에는 가족 주일 예배나 가족 초청 전도 등의 행사를 갖는다. 가족 찬양 대회나 전 교인 체육 대회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흐름과 문화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정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전개하지만, 더 많은 교회들이 점점 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정 사역의 접근에서 반(半)조직적 입장을 취하는 교회들이 대다수다. 이런 교회들은 대개 교회 자체적으로 가정 사역을 위한 어떤 전문적 조직이나 체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가정 관련 세미나 혹은 워크숍을 위한 교회 조직 및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 강사나 외부 기관들과 연계해 병행적 사역을 실시한다. 이런 행사를 실시할 때는 주로 가정 사역 관련 외부 강사를 초청하거나 가정 사역 기관에서 제작한 자료를 이용해 진행한다. 교회의 사역자와 리더들이 단체로 가정 사역 전문 기관의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한국 교회의 ‘병행적, 반조직적’ 가정 사역의 발전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고(‘Marriage Encounter’나 ‘Marriage Enrichment’ 등) 198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때 다양한 글과 메시지를 통해 가정 사역을 소개한 양은순 사모와 이동원 목사의 ‘새생활 가정세미나’, 두란노서원의 ‘가정사역학교’,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가정선교원’ 등의 영향이 컸다. 1990년대에 기독교가정사역연구원, 한국가정사역연구원과 같은 다양한 전문 기관들이 생겨나면서 가정 사역이 더욱 조직화되고 교육적이며 치료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전문 기관들은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교회를 하나의 큰 가정으로 보고, 교회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가정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다양한 사역 모델과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가정 사역을 시작한 대부분의 교회들이 비록 자체적으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정 사역을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역 프로그램들은 각각 운영 방식, 기간, 장소는 다를지라도 연령별 혹은 이슈별로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결혼예비학교’는 결혼을 앞둔 청년들로 하여금 결혼이 갖는 성경적 의미와 부부상, 가치관 수립, 계약이 아닌 언약, 결혼 준비 등의 이슈들을 다루게 한다. ‘부부성장학교’는 부부가 함께 건강한 신앙과 가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이와 유사한 ‘행복한 가정 만들기 세미나’는 부부의 성격과 역할, 갈등 관리, 경제 생활, 성 생활, 부부 대화 훈련 등을 실시한다. 특히 이 시대의 흔들리는 아버지들을 위한 ‘아버지학교’와 건강한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학교’는 건강한 가정 회복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을 위한 ‘고부학교’, 불신 남편들을 위한 ‘남편사랑교실’와 ‘부모학교’, 독신자나 이혼자 혹은 사별자들을 위한 ‘싱글학교’, ‘천국준비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현대 가정 사역의 이론적 정립에 공헌한 찰스 셀(Charles Sell)은 가정 사역에 대해 한 마디로 ‘교회 사역’이라고 정의한다. Charles Sell, 정동섭 역, 「가정 사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7), p. 15.
 그리고 “가정은 일반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만큼 교회에선 중요시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교회와 가정은 ‘공생의 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Ibid., p. 17, p. 21.
 1970년대 초반에 노먼 라이트(H. Norman Wright)는 기독교 교육과 청소년 지도자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교회가 가정을 위해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라이트에 따르면, 응답자 3분의 2가 지난 2년 동안 자기 교회에서 가정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고 가정 주제의 설교도 없었다고 밝혔다. Ibid., p. 20에서 재인용.
 
이런 상황은 21세기 한국 교회의 현실과 크게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필자가 비공식적으로 신학대학원생 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정 사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모든 학생들이 동의했지만 교회에서 가정 사역이 실시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제외하고 가정 사역 훈련을 받거나 가정 사역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현실은 가정의 혼란과 붕괴 현상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가정을 돕기 위한 중대한 조처를 취한 교회들이 별로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다양한 가정 사역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목회와신학」이나 국민일보 등 국내 잡지와 신문에서 홍보가 활발하게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에서 여전히 가정 사역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1세기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려면 보다 효과적인 홍보와 목회 사역자 개개인의 관심 고취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목회 준비를 하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고 성경 해석과 역사 및 철학을 배우는 것에 대해 당연시하면서 가정 사역을 위해 준비하거나 훈련받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따라서 신학대학원의 커리큘럼에 가정 사역 훈련을 반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막연하고 천편일률적인 접근에서 탈피해 현대인들의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가정 사역자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교회 및 교단적 인식과 인정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가정 사역 관련 교수나 전문가들은 각종 가정 사역 활동이나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전문 훈련 모델을 구축하고 가정 사역자들의 활동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가정 사역은 산발적 절기 행사로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문 사역자가 교회의 사역 철학과 구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연중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조직적 접근

이 접근은 ‘병행적, 반조직적’ 접근을 수용한다. 기존의 가정 사역은 주로 가정 사역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갖고 있는 문제나 곤경은 개인의 문제이고 책임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가정은 넓은 범위의 공동체로서 결혼과 혈연을 통한 가족뿐 아니라 함께 거하는 일꾼, 고용인, 외국인까지 가족 개념에 포함시켰다. 이것은 공동적이고 사회적인 예배 공동체로서 각 사람이나 가정의 문제를 당사자의 개인 문제로 한정시키기보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아파하며 책임을 지는 치료적 공동체이기도 했다. 이런 공동체적 전통은 신약과 초대 교회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성경적이면서 21세기 한국 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정 사역의 방향은 문제 중심의 개인적 접근을 넘어 공동체적 신학이 있는 접근과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이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이런 관점에 대해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며 설명했다.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 12:25~26). 필자의 지도 교수였던 브리스터(C. W. Brister)는 “교회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성경적 신앙의 내용뿐 아니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치유와 성장을 하도록 목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C. W. Brister, Pastoral Care in the Church, 3rd ed., rev. and expanded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2), p. 218.
 이런 관심, 돌봄, 치유의 사역은 어느 특정인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해,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사랑하신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함께 관심을 갖고 수행해야 한다. Ibid., p. 12.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와 윌리엄 윌리몬(William Willimon)은 교회가 가정에 대해 공동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접근해야 함에 대해 혼전 임신한 청소년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준다. 그들은 이런 경우에 많은 교회에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에까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혼전 임신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비난하며 수군거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동체적 접근을 하는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임신한 소녀와 가족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낙태보다 아기를 낳도록 하고 재정적으로, 시간적으로 도우며 함께 위기상황을 대처했다. Stanley Hauerwas and William Willimon, Resident Aliens (Nashville: Abingdon Press, 1989).

이런 공동체적 접근과 능력은 대학 4학년 때 음주 운전자가 몰던 자동차와 충돌해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전신 55%의 화상을 입고 온 몸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이지선 자매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들이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라고 말할 때, 지선 자매는 ‘네, 이러고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삽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지선 자매에 대해 다음의 책들을 보라. 이지선, 「지선아 사랑해」(서울: 이레, 2003); 이지선, 「오늘도 행복합니다」(서울: 이레, 2005).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돌봄 공동체의 맥락 외에 어떤 심리학적 접근이 죽음보다 더 힘들었을 고난의 골짜기에서 지선을 이토록 멋지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심리학적 상담 이론과 기술이 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가 이토록 놀랍게 축복을 받고, 그 공동체는 다시 그녀에게 축복의 울타리가 되어 더 많이 행복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이 놀라운 ‘공동체적 역동’(communal dynamics)을 일으킬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유재성, 「현대 목회 상담학 개론」(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p. 119.


맺는 말

필자는 본고에서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이 ‘개별적, 비조직적’ 접근과 ‘병행적, 반조직적’ 접근으로 전개돼 왔음을 전제하고, 21세기 한국 교회의 가정 사역은 ‘병행적, 반조직적’ 접근을 보완하면서 특히 개인의 문제 중심적 접근을 넘어 ‘공동체적, 조직적’ 접근을 할 것을 제안했다. 최근에 다양한 전문 사역 단체들과 더불어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지구촌교회와 같은 곳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가정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21세기형 가정 사역은 대형 교회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규모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형 교회에서도 기존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얼마든지 실시할 수 있다. 장현, “우리 교회 가정 사역을 말한다: 행복한 가정 만들기”,「월간 목회」 통권 320호(2003년 4월), pp. 320~325.

 건강한 가정 사역의 비전을 갖고 교회 공동체의 자원을 이끌어 공동체적이고 조직적인 가정 사역을 전개할 수 있는 리더가 있을 때 가능하다. 가정 사역은 가정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돕는 교회 공동체의 사역이다. 흔들리는 21세기 가정들을 위한 치유와 회복의 열쇠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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