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미션 2005년 경남함양 뿌리기사역 후기


2005년 뿌리기사역은 내가 현재 섬기고 있는 불꽃교회를 들어가면서 예정되어 있었던 일정이었다. 여름 한주만이라도 하나님께 헌신된 모습으로 다가서려는 뿌리기사역은 96년 처음 참여한 이래로,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원액적인 느낌이있어서 좋은, 한국교회 선교사역의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2005년 1월 교회에 들어가서 교육계획서를 청년들에게 설명할때, 여름에는 뿌리기사역을 갈려고 하는데, 만약 청년들이 동참해주지 않으면 전도사 그만두겠다고 선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는지...

그래도 청년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어, 이번 여름 사역까지 참여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청년들이 참석하는 이번 사역에 기도로 물질로 많은 도움을 주어 더더욱 고마웠다.

정해져 있어서 그런지, 이번 뿌리기 사역에 준비하는 나는 예전의 전투적인 자세로 임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 느슨하게 참석하게 되었다. 여러 일정가운데서도 그렇게 되었겠지만, 이번 사역에 있어서 나의 위치가 나중에 결정되는 바람에 더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총무님으로부터 뒤늦게 진지기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주문을 받고,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난 이상미 진의 지기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번에 진지기를 맡으면서, 이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동안 사역하면서 경험하면서, 옆에서 보아오면서 익히 알던터라 조금은 망설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진장으로서 소신있게 할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순종하며 따라가기에는 뭔가 일을 해야 할것만 같고...매우 애매하면서도 겸손의 능력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라, 워낙 교만한(?) 나로서는 조금 겁이 났다. 그러나 이상미 진장님은 나의 그런 부족함 마저도 사역 기간내내 온전한 것으로 들어 써 주셨다. 이 부분이 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사역을 떠나기 전날, 심히 걱정되는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 몸이었다. 사역전 1달부터 사역이 여름 한낮의 더위와 다투며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지라, 운동을 하자고 맘을 먹었는데, 계속해서 실패하고 결국 사역가는 하루 전까지도 이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다. 결혼후 운동하지 않아서 배는 나오고...허걱... 예전에 뛰다가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번에 가서 나 쓰러지는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역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그동안의 경력이 사역때 힘든시간들을 달콤하게 이겨낼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번에는 더 뛸수 있는 오기가 생겼고, 사역 전체를 포괄해서 볼수 있는 안목도 넉넉히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전도하러 갈때에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가서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가며 적절히 할말을 찾을수 있어서, 두렵지도 막연하지도 않았다. 어르신들을 대할때에도 그분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예측이 되는터라, 멀찍이 바라보면서 대응할수 있는 여유를 가질수 있었다. 사역을 여러번 하여 이전과 똑같은 것이라 생각되어 더 재미없고 단순하다고 생각될듯도 한데, 오히려 사역속에 있는 깊이에 매료되고, 한 영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넓어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금요일 마을잔치때에는 어르신들을 빙 둘러서 노래하다가, 이 분위기에서는 사역원들이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서 안아주며 노래를 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목사님을 쳐다보았는데, 곧바로 목사님이 그것을 지시하셨다. 목사님이 나를 보고 지시하신게 아니라, 목사님도 그렇게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사역을 한번하고 끝마치려는 사역자들에게 자신있게 권할수 있는 것 한가지는, 사역을 하면 할수록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이다. 예전과 똑같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우리 진이 맡은 마을은 죽당마을이라는 곳이었다. 마을이름의 유래는 어르신들께 들을수 없었지만, 뒤쪽에 대나무밭이 넓게 있는 것으로 보아, 죽당의 '죽'은 대나무와 연관된 것으로 보였다. 그 마을은 학교를 중심으로 비교적 젊은 분들이 사는 현대적인 집들이 모여있는 아래쪽과 시골마을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위쪽 마을로 구분되어 있었다.

죽당 마을의 어르신들은 70세 이상으로 고령의 홀로되신 분들이 대부분이셨는데, 활기차 보였다. 80되시는 할머님은 매우 정정해 보이셨고, 70살 되시는 막내(?) 분들은 열심히 활동하셨다.

우리가 섬기는 죽당마을은 가구수가 120여 가구나 되는 매우 많은 편에 속했다. 보통 이전에는 한 진에 60여 가구를 섬겼는데, 우리 진은 두배나 되는 마을을 섬기게 된 것이다. 게다가 면 소재지 이다 보니, 마을 구분이 제대로 서지 않아서 사역원들이 마을에 배치되고 나서 수요일까지도 마을을 제대로 파악할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책임구역을 할당받지 못해 열심을 낼수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진원들을 보내놓고 나는 3시간 정도를 들여서 마을을 전부 돌아다니며 진도를 그렸다. 그렇게 그리고 다니면서 어르신들이 혹여 볼새라 종이와 연필을 잘 감추어야 했고, 한곳도 빠지지 않도록 새심하게 그려야만 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냈을때,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정탐을 했는지 느낄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린 것을 진장님께 보고하고 진원들을 마을별로 맡기고 나니, 진원들이 자기가 맡은 곳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역에 구체적으로 임할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한시사역이 가진 장점중에 하나가, 대규모의 인원이 내려가서 사역하지만, 사역의 구체적인 것은 집단이 아닌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각 진에서 진원들에게도 개인적인 사역이 될수 있도록 마을을 떼어맡겨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요일 전도를 하러 들어간 곳이 있었다. 사실 그곳은 들어가기가 싫었던 곳이다. 집이 매우 현대적으로 비싼 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골마을에서 그런 곳을 보면 왠지 거북스럽고 우리가 필요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초인종을 누르기가 망설여지곤한다. 일반 어르신댁이라면 초인종도 필요없고 그저 열려진 대문앞에 가서 '어르신' 한번만 하면 되는데, 여기는 초인종을 눌러서 우리가 누구라는 설명을 들려오는 목소리앞에서만 해야 했기 때문에, 영~~ 망설여지는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복음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집을 불쌍하게 여기며 들어가기로 맘을 먹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마침 현관문에 할머님 한분이 앉아서 고추를 다듬고 계셨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들어가도 되겠냐고 여쭈었더니, 황당한 대답을 하셨다. '돈이 없으니 가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오해했나보다 싶어 계속 말씀드리고 들어가기를 청하였더니, 집에 아무도 없고 아들이 모레 온다고 그때 오라고 하셨다. 그럴수는 없어서 다시 한번 길게 설명을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문을 열어 주셨다.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그 넓고 좋은 집에 할머님 혼자 사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리가 다쳐서 현관 이상을 나가실수 없는 할머님 혼자서... 지금 92세 되신 할머님이신데, 눈이 맑고 사리에 분명하셨다. 아들들은 서울에서 꽤 잘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들중에 한명은 국회의원까지 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서울에서 아들들이 보내다준 옥대리석매트를 보여주시는데, 꽤 고가의 것으로 보여서, 집안이 다 잘사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다. 그런데 할머님이 다리가 펴지지 않아서 매일같이 앉아서만 생활하실수 있었다. 그래서 계단으로 되어 있는 현관문 밑으로내는 내려갈수도 없었고, 하루종일 그렇게 집안에서만 보내셔야만 했다.

부처를 믿는 집안이었다. 아들들은 해인사에서 무슨 스님이 오셔서 법명까지 지어주셨으며, 해마다 해인사로 돈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모레는 두해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데, 어느 절에서 와서 제사를 드려준다고 하셨다. 집안 한가운데에는 큰 아들이 갖다놓았다는 부처상이 있었고, 그 상에는 염주가 걸려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고 난 이후에 할머님께서 쉴새없이 말씀을 해주셔서 알게 된 사실이 대충 이러하다. 사람이 그리우셨던지 1시간 내내 쉴새없이 말씀하셨다. 계속 듣고, 반응을 하며 복음 전할기회를 찾아야 했다. 어르신이 당신의 다리가 구부려져서 펴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시고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들들이 서울에 가서 병원에도 입원해서 치료도 받아보았지만, 너무 연로하셔서 쉽게 낫지는 않을거라고 판정을 받고 내려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고역된 생활을 하시는 생각에 눈가에 눈물을 보이셨다. 나도 그 하신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죽어서도 살수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는지, 나의 앞서나간 열정이었는지 모르지만, 할머님 다리 아프신것도 하나님께서는 낫게 하실수 있다고... 그러니 예수님 믿으시라고...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복귀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서 얼른 어르신보고 따라 하라고 하고서는 영접기도를 올려드렸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렇게 마무리 할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마을잔치로 사역은 마무리로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어르신들을 모시러 가는데, 난 그 할머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있었다. 어르신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데, 어르신이 근심스런 모습을 보이셨다. 여쭈어보니 어제 얼떨결에 믿는다고 했긴 했는데, 어제 밤에 생각해보니 그래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밤에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아들들이 알면 뭐라 할것이며, 지금에 와서 이렇게 바꾸면 괜찮겠냐고... 게다가 내일 모레 아들들이 오면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그땐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해서 그 고민으로 인해 미안하지만, 예수를 못믿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난 오히려 힘을 얻었다. 못믿겠다고 하시는데, 복음에 대해서 진정으로 생각하고 고민하시고 받아들이는 문제까지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성령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나는 그 문을 나서지 않고 어르신이 반드시 믿게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어르신의 손을 잡고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자식들의 삶까지도 선하게 인도하시게 될것.... 30분간 설명을 드렸던 것 같다. 그리고 손으로는 어르신의 발을 붙잡고 간절히 중보하면서...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왜그리 눈물이 속으로 흐르는지... 억지로 참으려고 하니, 살짝 눈가에 눈물이 고였었다. 할머님이 그 모습을 보시며 빤히 쳐다보셨다. 그리고 내가 할머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하고 기도를 드렸다. 이후 할머님을 위한 복음전도는 계속되었다. 할머님은 계속해서 들으시면서 갈등하셨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그런 할머님의 표정은 평안함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을까?

사실 몇 년전에 뿌리기사역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할머님을 만난적이 있다. 그분께서도 예수의 복음을 다 들으시고는 믿지 못하시겠다고 그러셨다. 이제와서 맘 바꾸면 벌받는다고 안된다고 하셨다. 끝까지 설득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나는 힘없이 그 할머님 댁을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그때 그분이 생각이 나면서 이제는 포기해서는 안된다라는 굳은 결심이 내안에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령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어르신이 심각하게 고개를 떨구셔서 고민하시더니, 내가 ‘믿으시겠어요?’라고 묻는 말에 ‘그러시겠다’라고 대답을 하셨다! 할렐루야!!

그분의 두 손을 잡고 영접 기도를 다시 드렸다. 그분의 아멘으로 기도를 마치고 나니 할머님께서 그러신다. 이제 믿었는데, 내일도 선생님이 오셔서 가르쳐주시려우?

오 하나님! 과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이었음을 확신한다. 이 귀중한 복음의 진리를 알려주었다고 다시 와서 알려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베드로를 받아들여 복음의 진리를 전해들었던 고넬료가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하지만 나는 내일이면 떠난다. 내일은 오지 못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럼 어떻게 내가 계속 배우고 믿으면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할머님 바로 두집 건너에 안의제일교회라고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께 연락해서 어르신을 찾아뵈라고 전해드린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을 하신듯 고맙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당신 몸이 불편해서 밖을 나갈수가 없어서 교회에 못가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면 찾아오실거라고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종이라면 반드시 그리 해주실거란 믿음에서...

댁을 나오기 전에, 할머님께 한가지만 약속해 두었다. “할머님! 내일 아들들이 와서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제사는 지내면 안되세요!”

그랬더니, 할머님께서 “나 한번 약속하면 지킵니다. 한번 믿기로 했는데, 변하면 안되지..” 말씀하셨다. 약속있는 답변을 듣고 그 집을 나오면서 왜 이리 기쁨이 넘치던지...

금요일을 그렇게 정리하면서, 토요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어르신 생각에 그냥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지난주에는 어떻게 보내셨을까? 참 궁금해진다. 전점식할머니...

주일에 청년들이 사역다녀온 것이 힘들었지만 다들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발표하는 것을 듣고는 많이 흐믓해진다. 그리고 그때 참석하지 못했던 청년들이 꼬맹이들을 서울에 불러오는 물주기 사역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니 더더욱 뿌듯해진다.

사역을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라는 건물에 교회의 의미를 더 많이 두고있는 요즘 기독교인들. 이들안에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는데, 적절한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저 토론회 몇 번으로, 혹은 기도회 몇 번으로 끝나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오히려 그렇게 고민하고 번뇌하는 시간을 줄이고 결정하고 사역하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늘리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손쉽게 풀릴 것이다.

아무쪼록 교회에서 성도들을 사역의 현장에 있게 하는 적절하고 알맞은 사역의 틀을 나름대로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교회가 일주일에 한번오는 야영지가 아니라, 6일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교해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거주지가 될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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