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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Faith/묵상

대가와 희생?

by 길목 2005. 12. 15.

오늘 아침부터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상황이 안좋은만큼...더 기도하게 되었다.


아침에 나올때에도 아내는 나에게
시험시간에 입덧이 심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했었다.
울렁거리면 글자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회사에 와서도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아내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왔고
임신하기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왔는데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인해 공부를 못하게 되었다고
그러니 아이를 위해서 포기하고 희생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번 시험을 책임져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은
예수님의 희생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면서
자신의 것을 구하지 않으셨다는 사실....


난 더 이상의 기도를 드릴수 없었다.


맞다... 아내가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의로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보다 더 하셨다.


엊그제 읽었던 C.S.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 [사자,마녀,옷장]을 읽으면서 죄로 인해 죽어야 했던 아이를 위해 아슬란이 대신 희생해야 했던 상황도 다시금 명확하게 떠올랐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양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수 있는 소중한 사건이었다.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에게 복을 주시고 그 아이가 행복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온갖 주변환경을 바꿔주실만 한데, 그들은 초라한 마굿간에서 아이를 해산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상황이다. 어느 누가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의 본보기로 삼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근심을 시대에 짊어 지고 가려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축복된 삶이다. 하나님의 아픔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 시대 가운데 나타내려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벗은 발과 벗은 몸으로 3년간을 돌아다녀야 했던 이사야가, 음란한 아내를 맞아 결혼을 했던 호세아가, 결혼도 하지 않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던 세례요한이 그런 축복된 삶을 살아갔다.


나는 적어도 이런 사람이고 싶다.


상황이 어려워, 힘들어 하고 지쳐있지만, 울고 있는 어린 아이는 풍족하게 먹여 살리려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장자의 삶을 살고 싶다. 그저 항상 먹을 것을 채움받고 사는 어린 아이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다 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대를 향해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다 큰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훈련 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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